[리뷰]리처드 3세, 여전히 새롭네···차세대 '미친왕 이야기'

기사등록 2020/02/05 13:25:39

예술위 '차세대 열전 2019' 쇼케이스

[서울=뉴시스] 차세대열전 2019! 음악극 '리차드 3세 - 미친왕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05.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제 닳고 닳았을 법도 한데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1452~1485)는 공연계의 영원한 '마르지 않은 샘'을 증명했다.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연출가 가보 톰파의 '리처드 3세', 중국 국가화극원의 '리차드 3세'(理査三世),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예술감독의 '리처드 3세', 연출 서재형·작가 한아름 부부가 합작하고 황정민이 주연한 '리차드 3세'······.

최근 몇년만 살펴봐도 이미 셰익스피어가 극화한 리처드 3세 이야기는 여러 뛰어난 예술가들이 숱하게 변주했다.

그러나 또 새로웠다.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지난 1~2일 공연한 음악극 '리차드 3세 – 미친왕 이야기'(작곡·음악감독 한혜신, 극작·연출 정찬수)는 신선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에도 양일간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개성 넘치는 배우 육현욱이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하고 대학로에서 주목하는 배우들인 이진우·김리현 등이 출연한데다 음악, 춤이 어우러지는 구성이 기존 리처드 3세를 다룬 극들과 차별화를 가지면서 이전부터 젊은 관객들이 점 찍어둔 작품이었다.

생전 리처드 3세는 '꼽추왕'으로 불렸다. 뒤틀린 몸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 리더십으로 무장했다. 경쟁구도의 친족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의 중심에 선 희대의 인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항상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던 그는 이 과정에서 심리적으로도 뒤틀린다. 이로 인해 숱한 작품들에서 리처드 3세는 사이코틱한 성격이 강조돼 왔다.

리처드 3세를 다룬 연극은 잔인함, 열등감, 우월의식 등이 비균등하게 뒤섞인 그의 정신적 폐허함을 배우의 광적인 연기와 그로테크한 연출로 형상화해왔다.

일렉 기타의 전율로 시작하는 '리차드 3세 – 미친왕 이야기'는 이를 서정적이면서 애조가 깃든 음악, 발레·현대무용 등이 뒤섞인 몸짓으로 풀어낸다. 한혜신 음악감독이 연주하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 현악기가 주축이 된 클래식음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화를 이룬다.
[서울=뉴시스] 차세대열전 2019! 음악극 '리차드 3세 - 미친왕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05. realpaper7@newsis.com

음악극이자 무용극 같기도 한 이 총체극은 그래서 리처드3세의 내적인 부분을 톺아봄에도 동적이다. 유령을 따라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게 되는 리처드 3세는 트라우마를 다시 직면한다. 괴상한 외모의 자신을 거리낌 없이 받아준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잃었던 기억을 복기한다. 이후 그는 생사를 건 '인정투쟁'에 나서고 그 투쟁은 피 비린내가 나는 전쟁이 된다.  

전체적으로 검정 무대 위 새겨진 흰색 십자가는 이 작품이 한 편의 제의처럼 느끼게 만든다. 리처드 3세는 그 위에서 제사장이 된다. 희생양은 자신이 증오하고 질투하며 복수의 대상으로 여긴 것들이다. 그는 원하던 자리를 얻었지만 바로 추락한다.   

젊은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한 만큼 '리차드 3세 – 미친왕 이야기'는 기존의 클리셰나 레퍼런스에 억압되기 보다 자유롭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관행을 쉽게 따르지 않는다.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도 돋보이는데 특히 연극 '환상동화' 등에서 재기발랄한 면모를 뽐낸 육현욱은 내면에 골몰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고전은 '먼지를 뒤집어쓴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차세대들은 어른들을 흉내내는 대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열전 2019!'를 통해 선보인 작품이다. 한편 '차세대 열전 2019'은 3월3일까지 선보인다. 이번에 예술위가 뽑은 차세대 예술가는 총 4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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