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새로운 길'은 차분한 '정면돌파전'

기사등록 2020/01/01 12:40:44 최종수정 2020/01/01 12:48:14

올해 신년사, 노동당 회의 보도문으로 대체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폐기 선언하고

새로운 전략무기 곧 선보이겠다고 밝혔지만

ICBM 아닌 SLBM 시험발사로 대신할 가능성

트럼프에 연말 대선까지 시간 벌어주는 측면 있어

'정면돌파전'의 핵심은 자력갱생 방식 경제 발전

내각중심제 강화, 제도 개혁 필요성 누누이 강조

남북관계 전혀 언급 안해…경색 국면 지속될 듯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나흘째 회의가 지난 12월31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은 기념촬영 준비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박부위원장은 전원회의 내내 주석단에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신변이상설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마지막날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면서 건강문제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공개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0.01.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0년 신년사를 생략했다. 김위원장이 집권한 이래 처음이다. 그러나 김일성 시대에 신년사를 최고인민회의 연설문으로 대체한 전례가 있다. '할아버지 따라하기'를 재연한 셈이다.

대신 전례없이 세밑에 4일 동안 진행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도문을 노동신문 4개면에 걸쳐 싣고 그 내용을 1일 아침 9시부터 조선중앙TV가 되풀이 방송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북한의 중대 정책결정을 하는 중요 행사지만 회의 진행은 사실상 김위원장의 원맨쇼다. 당중앙위원장이자 노동당 제1서기로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당사업과 국가사업을 결산하고 대책과 방향을 제시하는 연설을 사흘동안 7시간에 걸쳐 했다. 김위원장이 제시한 정책방향에 대한 토론은 늘 그렇듯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며 찬성과 찬양 일색이었다.

한편 김위원장이 지난 4월 직접 '연말시한' 운운하며 미국을 향해 경고장을 날린 것을 감안할 때 이번 회의에서 나온 대미 발언은 상대적으로 강경하기 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또 미국에 대해 제재해제를 기대하지 않고 장기전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김위원장은 이 모든 것을 '정면돌파전'이라는 단어로 응축했다. 이번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의 기본 사상, 기본 정신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특히 그는 "우리의 전진을 저애(저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라는 투쟁 구호까지 제시했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은 경제 개혁을 위한 혁신을 집중 강조했다. 현 정세가 "미국과의 장기대립을 예고"한다면서 "적대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을 향해 미국의 제재를 자력갱생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충분히 억제할 수있다고 밝힘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김위원장은 이어 "자력갱생, 자급자족하자고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우리의 사업은 지난 날의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립, 자강의 거창한 위업을 견인하고 추동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대담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침체되여 있는 국가관리사업과 경제사업 등 현 실태에 대해 분석"하고 "경제부문의 대응이 (중략) 자력갱생한다고 구호만 웨(외)치면서 실지에 있어서는 인민경제의 자립적 토대를 정비보강하는데 힘을 넣지 않고 있는 페(폐)단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어 세세하게 지적"했다.

이런 비판을 근거로 김위원장은 "경제 사업체계와 질서를 정돈할 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파격적이다. "우리 공화국이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까지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림(임)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김위원장이 제시한 대책은 내각책임제와 내각중심제였다. "국가경제의 명맥과 전일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에서부터 내각의 통일적 지도와 지휘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내각사업이자 당중앙위원회 사업이고 당중앙위원회의 결정 집행이자 내각사업"이라고 밝혀 경제 정책 집행에서 당의 내각에 대한 일방통행식 지시를 중단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김위원장은 미국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내면서 수위조절을 했다. 연설의 앞부분에선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현 정세"를 바탕으로 경제건설을 해나가기 위한 방도를 제시했다면 연설의 뒷부분에선 "우리의 장엄한 정면돌파전을 정치외교적, 군사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핵, 미사일 모라토리엄 폐기와 전략무기 개발 지속을 천명했다. 

김위원장은 "조미(북미) 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페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 사이에만도 미국은 (중략)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먕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세계 앞에 증명해보이였다"면서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밝혀 핵,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김위원장은 또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미국이 비핵화의 대가로 제시해온 북한의 장미빛 미래상을 배격하고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은 북한의 핵시험과 ICBM 시험 발사 중지를 최대의 외교업적으로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할 부분이다. 

김위원장은 그러나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조건을 붙였다.

이 발언은 중의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추가로 제재를 강화하거나 압박하면 강하게 맞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인민들을 향한 메시지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미국이 제재를 강화하고 압박하지 않는다면 '큰 사고'를 치지는 않겠다고 미국에 넌지시 알리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당장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지는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면 김위원장이 "멀지 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아마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닌 '새로운 전략무기'일 것이다.  

예컨대 건조중인 3,000t급 잠수함을 진수하고 잠수함에서 SLBM(잠수함발사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SLBM은 그 자체로 ICBM 만큼 사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미국 본토 가까운 곳으로 은밀히 이동한 잠수함에서 본토를 미사일로 공격하는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SLBM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북한이 새로 진수한 잠수함이 장시간 은밀하게 항해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가졌는지 등이 파악되기 전까지 미국이 본격 대응하기가 애매한 측면이 있을 듯하다. 다시 말해 SLBM 발사는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완전히 깨지는 않는 회색지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목은 미묘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오는 11월에 치러질 대선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한다면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이 소멸되기 때문에 일단 기다려 보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트럼프가 재선되길 바라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SLBM 시험발사를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와 동일한 위협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외교업적을 망가트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난해 20차례 가까운 미사일 시험발사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입장을 반복하는 것이 연말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전원회의 발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예 언급조차 안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무시 전략이 올해도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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