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재판 경우는?…꼬여만 가는 국민연금 가이드

기사등록 2019/12/01 07:18:00

'1차 조사 결과' 기준 애매…검경 조사? 재판부 판단?

"형 확정 이전 책임 누가 지나"vs"주주가치 제고 목적"

시장 전문가들 "평판 리스크로 주가 하락…행사해야"

[서울=뉴시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8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장 한편에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이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가이드라인 재논의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2019.11.29.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류병화 기자 =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하는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견 대립이 격화돼 연내 원안 확정도 장담할수 없게 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29일 오전 2019년도 제8차 회의를 열어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후속조치' 중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심의했으나 추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보완한 후 논의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은 횡령·배임·부당지원·경영진 사익편취와 같은 경영진의 법령 위반 등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된 경우 기업과 충분한 대화를 우선하되, 개선하지 않는 기업엔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제안을 행사하는 게 골자다.

복지부는 기금위 이후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추가적인 의견 수렴 및 조율을 거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중점 관리사안 중 '국가기관의 1차 조사 결과 등을 기준으로 개선 여부를 판단한다'는 가이드라인 해석을 놓고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조사 결과가 법원의 1심 판결을 의미하는 것인지, 경찰의 조사 이후 사건 송치 단계, 검찰의 조사 이후 기소 판단 여부 등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만일 법원의 1심 판결로 해석한다면 형 확정이 이뤄지기 이전 단계에서 이사 해임 주주제안이 명시되게 된다.

때문에 '대법원 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 1심만으로도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면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의견과 '국민연금은 주주가치를 제고해 장기수익률을 높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의견이 대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재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으로,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의결됐다면 이 부회장의 경우 1심 이후에라도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2대주주(10.49%)로서 이사 해임 주주제안을 제기할 수 있다는 국민연금의 프로세스가 가이드라인에 명시되게 된다.

이를 놓고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해외 연기금의 경우 '형 확정 이후 주주권 행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 경우는 없으며 주주권 행사는 시장에서 바라보는 '평판 리스크(Reputation Risk)'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의 확정 여부와는 별개로, 횡령·배임 혐의 만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실추됐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이를 반영해 하락하게 된다. 때문에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해 해당 리스크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혐의 보도만으로도 주가는 하락하기 때문에 회사의 품위를 떨어뜨려 나가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연금은 사법기관이 아닌 투자기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혐의 결정이 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특정 회사의 대표이사라는 자리는 천부적으로 보전되는 자리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법적인 측면에서야 형이 확정하기 전까지 무죄추정이지만 그건 법에서 보는 관점"이라며 "법적으로 본다면 최종 재판이 이뤄지기 전까지 무죄 추정을 하는 게 맞지만 상장기업 이사는 법보다 엄격한 윤리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기업의 이사라면 사회적 책임과 평판 리스크를 갖는다"며 "범죄의 경중을 따져 충분히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도 "국민연금 수급자를 지분별로 의결권을 부여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국민연금에 더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야 연금 자산의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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