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주창하는 정부, 2.0%까지 내릴까…이번에도 '레인지' 제시?

기사등록 2019/11/29 17:06:12

IMF, OECD, KDI 이어 한은도 올해 성장률 2.0% 제시

정부, 내달 '경제정책방향' 발표하며 전망치 하향조정

4분기 재정 집행, 삼성 13조 투자 계획 등 반영할 듯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9.11.29.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 장서우 기자 =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이어 한국은행까지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줄줄이 하향했다. 이제 정부만 남았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다음 달 하순께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입을 빌어 2.0~2.1% 수준을 제시했다. 홍 부총리는 잠재 성장률(한 나라의 경제가 가진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성장률 전망치) 수준이 2%대에 머무르고 있는 점을 들어 저성장을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불확실성이 쉬이 걷히지 않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올해도 지난해처럼 전망치를 '레인지'(range·범위)로 설정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 계정을 산출하는 기관인 한국은행은 29일 '경제전망(2019년 11월)'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0%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수출, 투자 등 주요 경제 지표의 회복세가 더딘 점과 함께 소비 증가세 역시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올해 성장률에 대한 한은의 전망치는 지난해 1월 2.9%로 처음 제시된 후 같은 해 7월 2.8%→10월 2.7%→올해 1월 2.6%→4월 2.5%→7월 2.2%에 이어 6차례 하향 조정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국내 경기는 현재 바닥을 다져가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히며 '경기 바닥론'에 힘을 실었다. 그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제약한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돼 왔던 미·중 무역 분쟁이 앞으로 더욱 악화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 내년 중반부터 반도체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설 것이란 예측에 근거해서다. 다만 2.5~2.6% 수준인 잠재성장률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을 들어 "성장의 모멘텀이 강하진 않다"는 전제를 달았다.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한 해 추진해 나갈 경제 관련 정책의 큰 틀)'을 발표할 시점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기재부의 결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말 올해 목표 경제 성장률을 2.6~2.7%로 제시했던 기재부는 하반기 들어 이를 2.4~2.5%로 0.2%포인트(p)씩 낮췄다. 당초 예상보다 대외 여건이 큰 폭으로 악화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서울=뉴시스】9일 한국은행의 조사통계월보에 실린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9~2020년중 2.5~2.6%로 지난 2016~2020년중 2.7~2.8%보다 약 0.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정부가 성장률을 레인지로 제시한 것은 지난 2005년 이후 14년 만이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17년 12월까지만 해도 정부는 올해 우리 경제가 3.0%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같은해 7월 2.9%로 떨어트린 후 지난해 말 2.6~2.7%까지 내려 잡았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까지도 범위를 잡아 제시했다. 한은의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정부 예상을 크게 빗나가게 된다.

홍 부총리가 일찌감치 기존 전망을 달성하긴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어 이번에도 하향 조정할 것이란 점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문제는 조정의 폭이다. 기재부는 재정 집행과 함께 각종 경제 정책이 4분기까지 낼 효과를 반영해 전망치를 내놓기 때문에 한은보다는 다소 높은 수치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IMF가 제시한 2.0%나 OECD의 9월 기준 전망치인 2.1% 등을 언급했었다. 결국 2.0% 또는 2.1% 중 하나를 제시하거나 2.0~2.1%로 범위를 잡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선 이미 2.0% 성장률이 대세적인 분위기다. 2.6%에서 2.0%로 대폭 낮춘 IMF에 이어 OECD(11월 전망 기준), 국책연구기관인 KDI,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 등이 줄줄이 같은 수치를 내놨다. 한국경제연구원(1.9%)과 현대경제연구원(1%대), 자본시장연구원(1.9%),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1.8%), LG경제연구원(1.8%) 등 일부 민간에선 한층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성장률 방어를 위해 확장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는 연말까지 중앙 재정의 97% 이상을 집행할 것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달 말까지의 집행률은 84.3%다. 4월께 6조7000억원 규모로 편성돼 국회 심의 과정에서 5조8000억원까지 깎여나간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출납 기준 지난 19일까지 5조3000억원(90.7%)이 집행됐다. 그러나 실제 시중에 풀리는 돈을 기준으로 집계된 실집행액은 4조2000억원(72.1%)에 그친다. 정부는 재정 집행 속도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여러 경제 지표들의 흐름을 볼 때 재정의 힘만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홍남기 (왼쪽)경제부총리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를 끝내고 밝게 웃으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19.11.29. photothink@newsis.com
다만 삼성이 지난달 발표한 13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은 명백한 호재다. 전체 투자액 중 10조원가량이 국내 지표에 반영되면 성장률에 대한 민간 부문의 기여도가 소폭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홍 부총리는 이와 관련, "연내 계획된 투자는 착실히 집행됐으면 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 역시 "컨퍼런스콜(conference call)을 통해 발표한 계획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내년 우리 경제가 2.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역시 미래 경기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지난달부터 반등하고 있는 점을 들어 경기가 저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띠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상태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이 지표는 지난달까지 2개월 연속 올랐다. 2017년 4~6월 이후 2년4개월 만에 가장 긴 기간 상승세를 유지한 것이다. 현재의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함께 역대 최장기간 동반 하락세를 보이던 선행 지표가 반등한 것을 두고 통계 당국은 "향후 경기 전망에 긍정적인 사인(sign)이 강해졌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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