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뇌관 '의원정수' 각당 수싸움…"합의했다" vs "정치공작"

기사등록 2019/10/28 17:58:44

작년 12월 선거제 개편 합의문엔 구체적 명시 애매

한국당, 의원정수 논의에 동의한 것 뿐 합의 부인

정의당, 찬반 떠나 정개특위 협상 결과 수용 요구

평화당, 先선거법 처리 원칙 하에 조건부 찬성론

바른미래, 당권파는 찬성-비당권파는 반대 '대립'

【서울=뉴시스】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5당 원내대표 합의문.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올해 4월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의원정수 확대'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총선을 앞둔 장치권의 내홍이 더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의원정수 논란은 심상정 대표가 지난해 12월 여야 5당의 선거제 개편안 내용 중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30석) 내에서 의석수를 확대하는 안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동의한 것처럼 주장하면서 불거져 나오게 됐다.

지난해 12월15일 여야 5당이 체결한 선거제도 개편 관련 합의문을 살펴보면,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여야 5당은 선거제 개편안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할 대상을 합의했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석수 비율 등을 놓고 각 당마다 첨예한 시각 차를 좁히지 못해 최종 합의안 도출은 무산됐다. 결국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큰 틀의 원칙에 공감하면서 선거법 개정안을 합의했고 지난 4월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됐다.

심 대표는 전날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선거제 개혁과 관련해 의원정수 확대 등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지난해 12월 한국당까지 함께 여야 5당이 합의한,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국민의 저항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원정수 확대를 다시 논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의원 세비 총액을 동결한 전제 위에서 의원정수 확대 검토는 오래된 논의다. 그런 논의가 바탕이 돼 여야 5당 합의로 10% 이내 확대를 합의한 것"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선거제 개혁 합의문을 읽어보면 정개특위에서 의원정수 확대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를 하는데 합의했을 뿐 의석수 확대를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한국당이 전체 의석수 300석을 270석(지역구 30석 축소)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자체 선거법 개정안과도 상통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밥그릇 정당들의 호흡이 척척 맞다. 여당은 슬쩍 의원수 확대 폭탄을 던져놓고 수습한다. 이를 놓칠 새라 정의당은 불을 지피고 있다"며 "여론몰이용 정치공작이 또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을 갖기전 악수를 하고 있다. 2019.10.28.jc4321@newsis.com
나 원내대표는 "심상정 대표, '국민들이 300석 이상 늘리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300석 이내에서 해야 된다' 지난 3월 본인이 본인 입으로 한 말 아닌가"라며 "국민이 얼마나 우스우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지 저는 기괴할 정도다. 왜 없는 합의를 있다고 하는가. 권력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서 정치 허언증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비열하고, 또 비겁한 정치공작"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엄밀히 말하면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논의하거나 검토하기로 한 것일뿐 합의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게 한국당의 입장인 반면, 정의당은 의원정수 확대 여부를 정개특위 합의에 따르기로 한 만큼 한국당이 협상에 불참했더라도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에 따라 의원정수 확대는 기존에 합의한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다.

지난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해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 개정안은 전체 의석을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253→225석)은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47→75석)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역구 축소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개별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의원정수 확대가 '묘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조국정국'의 출구 돌파구로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선(先) 공수처법 처리 후(後) 선거법 개정 원칙을 세우자, 군소정당들이 선(先) 선거법 개정 후(後) 사법개혁 처리 약속 위반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의원정수 확대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연대'를 복원하는 촉매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법안 처리 순서를 임의로 바꿨다고 반발하는 군소정당을 달래려는 민주당이 고육지책으로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합의 처리 가능성을 열어두자, 정의당은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총선을 반년도 안 남긴 시점에 의원정수를 확대하기 위한 군불 때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정의당에 이어 바른미래당도 의원정수 확대를 요구하며 한국당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당 일각에서는 상반된 목소리도 흘러나와 당론이 모호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심 대표가 제기한 의원정수 10% 확대안에 대해 "제가 꾸준히 단식한 결과로 5당 합의에서 의원정수는 10% 이내에서 330석으로 한다고 이야기했다"며 "국민이 반대한다고 하지만 정치권이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손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국회의원 수 많지 않은 것, 국회 활동 커져야 하는 것, 앞으로 정치가 국회 중심의 정치가 돼야 한다는 것 등을 갖고 설득하고 추가 예산은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 세비도 보좌관 수도 줄이고 전체 의원 관련 예산을 최소 5년~10년 동결하겠다고 같이 내놓으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오신환 원내대표는 "손학규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개인 의견일 뿐, 바른미래당은 '정수 확대' 관련 당론 정한 바 없다"며 "당론 결정은 의원총회 소관 사항으로 손학규가 월권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오 원내대표는 "나는 '의원정수 확대 반대' 한다. 의원정수 확대 없이 지역구 의석 줄이는 것이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여야 4당 합의 정신이기 때문"이라며 "이제 와서 '의원정수 확대'를 재론하는 것은 정략적 발상으로 한국당의 '묻지마 반대'에 힘만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손학규 (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성사 및 선거제도 개혁안 통과 결의 시민사회와 정치권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23. photothink@newsis.com
민주평화당은 의원정수 확대에는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다. 다만 선거법 개정안을 먼너 처리한 후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또 의원정수를 16석 늘리는 박주현 최고위원의 법안을 선거법 개정안으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선거제 개혁에 대해 "이제 8부 능선을 넘었지만 아직도 불안 요소가 있다"며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의 숫자가 전체 4분의 1에 달한다. 그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돌파해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는 자신을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개혁법은 결국 발의하지 않은 것과 같다. 단지 시늉을 내는 것"이라며 "가결처리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보수 수준을 줄여서 세비 삭감을 통해 보수 수준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여야 5당이 문서 합의한 대로 정원 10% 증원 논의에 착수한다는 문제에 대해 각 당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제 심상정 대표가 10% 증원의 불가피성을 이야기 했다. 평화당도 동의한다. 따라서 지역구 의원의 최소 감축 또는 지역구 유지를 전제로, 패스트트랙 선거제 개혁안 처리가 선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자유한국당은 의원정수 확대안을 국회의원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꼼수로 폄하하고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황교안 당대표는 심상정 대표가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서 제시한 의원 정수 확대안에 대해 "민주당과 다른 야당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의석을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가. 이 점을 분명하게 국민들 앞에 말씀해주시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황 대표는 "의원세비 총액만 동결하면 추가적인 국민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인가. 정의당, 민주당에게 묻는다. 국회의원 한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세비만이 아니다. 온갖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다 따라가야만 하고, 이런 부담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해서는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의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얻기 위해서 정의당의 영혼을 팔고, 민주당 2중대가 되어 불의한 조국의 수호에 앞장선 것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며 "국민은 그래서 '불의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처지에 의원정수를 확대하자는 것은 정말 염치가 없는 일"이라고 쏘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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