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 나오는 페스티벌 지치지 않나요?"···'다빈치모텔'

기사등록 2019/10/27 10:22:49

현대카드 새 문화프로젝트

잔나비, 커버밴드 '난나비'로 분해 흥미

대형 록 페스티벌 내리막 속 대안될 지 주목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사진 = 현대카드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만 계속 나오는 페스티벌 지치지 않나요?"

대형 록페스티벌의 종언(終焉)이 내려진 시점에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일갈이 통쾌함을 안겼다. 26일 오후 서울 이태원 소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연사로 나선 정 회장은 현대카드가 새 문화 프로젝트 '다빈치모텔'을 시작한 이유를 풀어냈다.

사실 현대카드 역시 국내 대형 음악 페스티벌 붐이 일던 2013년과 2014년 '시티 브레이크'를 통해 이 흐름에 편승했다. 그러나 이후 대형 음악 페스티벌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2017년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공연을 주최하는 등 단발성 문화 이벤트는 간헐적으로 이어왔지만 현대카드 역시 페스티벌 형식의 문화 프로젝트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오픈 이노베이션 등 디지털 역량을 높이는데 주력해왔다. 문화마케팅으로 이름을 드높인 현대카드가 문화 쪽에서 한발 빼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그런 찰나에 들고 나온 '다빈치모텔'은 흥미로운 페스티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터호텔에서 외형을 따왔다. 오랜 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재충전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 속살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영감을 받았다.

음악 공연뿐 아니라 토크, 퍼포먼스 등 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아이콘으로 통하는 이들이 강연하고 관객과 대화한다. 연사 중 자신이 가장 (섭외) 가성비가 좋다며 너스레를 떤 정 부회장은 "러스티(lusty·활기찬)한 문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다빈치모텔'을 요약하면 지덕체(智德體) 문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각본가, 영화제작자, 화가, 에세이스트 등으로 활동 중인 배우 하정우, 웹툰 '신과함께' 주호민, 올해 작고한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가 자신의 브랜드 디자인 책임자로 임명한 김훈 디자이너, 급부상 중인 젊은 소설가 김금희, 디지털 크리에이터 기획사 샌드박스 이필성 대표 등은 각자 지식과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눴다. 지(智)와 덕(德)이 겸비된 시간이었다.

4년 만인 최근 새앨범 '이방인'을 발표한 래퍼 이센스, 앨범마다 음원 차트를 석권하는 싱어송라이터 장범준 공연에서 관객들은 체(體)가 단련될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은 바이닐앤플라스틱, 현대카드 스토리지,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와 이마트 브랜드 피코크, 인근 카페 등을 부지런히 오가야 하니 움직임도 상당하다.

잔나비 (사진 = 현대카드 제공)
서울시향 이사도 맡고 있는 정 부회장은 이날 현대카드가 문화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금융 회사보다 문화적 기반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 전문 기관들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신 하나를 선택하면 그것에 파고든다고 했다.

모텔이라는 콘셉트를 잡은 이번 '다빈치모텔'에서 관객은 모텔에 머무를 때 주는 파우치 모양의 주머니를 받는다. 콘셉트의 디테일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안에는 물, 양말, 협력사의 혜택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 등이 들어 있다.   

정 부회장은 이날 한동안 문화적 큰 흐름이었던 '미니멀리즘'에 관해 "현대카드는 올해 끝났다고 선언했다"며 그 이후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다. "혼밥, 혼숙 등 개인적인 활동이 주를 이루는 시점에 (외로움을 안겨줄 수 있는) 미니멀리즘은 더 피로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가족주의, 풍요로움에 맞다. 지금 시대에는 격리되는 기분을 준다"는 진단이다.
 
윤종신 (사진 = 현대카드 제공)
'다빈치모텔'이 표현적이고 생동감이 있는 이유다. 특히 리듬감을 줬던 것은 '시크릿 게스트'들의 공연이었다. 출연을 예고하지 않은 뮤지션들이 깜짝 무대에 올랐다.

첫날인 25일에는 대세 밴드 '잔나비'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게릴라 공연을 했다. 신인 시절 이 건물의 작은 공간인 리프트에서 버스킹을 했다는 보컬 최정훈과 멤버들은 짧은 시간에도 울림을 줬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잔나비 커버밴드인
'난나비'로 소개하며 흥미를 돋웠다. 팬들은 이들을 잔나비가 아닌 난나비로 믿어줬고, 그렇게 암묵적인 '가상의 약속'에서 열린 공연은 새로움을 환기시켰다.

26일 시크릿 게스트의 주인공은 윤종신이었다. 이날 바이닐앤플라스틱에 자신의 음원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의 곡들이 담긴 '월간 윤종신 바이닐' 한정판을 내놓기도 한 윤종신은 '고요'를 시작으로 쌀쌀해진 10월말의 날씨에 어울리는 서정적 감성의 곡들을 불러나갔다.

정 부회장 말마따나 사실 이태원은 1960~70년대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본거지이자 아지트였다. 이곳이 새로운 문화 프로젝트의 근원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빈치 모텔'이 보여줬다. 현대카드는 25~26일 관객은 약 2000명, 방문객은 약 15000명으로 추산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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