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말라" "협력하자" 냉온탕 오가는 北…文 '촉진자' 시험대에

기사등록 2019/06/28 14:43:09

시진핑, 27일 정상회담서 文에 방북 결과 소개

"北, 비핵화 의지 변함 없어…韓과 화해·협력 용의"

北 외무성은 상반된 메시지 "북미 대화 참견 말라"

韓에 촉진자 역할 아닌 당사자 역할 바라는 듯

文, 미·중·러와 연쇄 회담 통해 돌파구 마련 시도

중·러에는 '北 설득', 미국에는 '유연성' 요청할 듯

【오사카(일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9.06.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對南) 메시지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북한은 "북미 대화에 참견하지 말라"며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비핵화 의지는 여전하다. 남북 화해·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우호적인 메시지도 내고 있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중단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문 대통령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협력을 이끌어내 대화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28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전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결과를 청취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부환경이 개선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고 싶으며, 인내심을 유지해 조속히 합리적 방안이 모색되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한국과 화해 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대화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인 지난 26일 국내외 언론들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나와 세 차례 회담에서 빠른 시기에 비핵화 과정을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메시지에 앞서 북한 당국은 우리 정부의 '촉진자' 내지는 '중재자' 역할에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27일 권정근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조미(북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봐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북한 외무성 논평이 심각한 대남용 메시지는 아닌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이번 논평이 대남 업무를 담당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아닌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에게서 나온 것은 북미 대화를 앞두고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는 해석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지금까지 밝혔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북미 대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는 점만 말씀드린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이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왔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읽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친서 받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며 만족을 표시하며, "트럼프대통령의 정치적판단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고 하시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것" 이고 밝혔다. 2019.06.23.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이처럼 최근 나오고 있는 북한의 메시지가 냉온탕을 오가는 이유는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북한은 비핵화 방법을 논의하는 협상은 어디까지나 북미 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북한은 한국이 북미 간의 '중재자'가 아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입장에 얽매이지 말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정상화 등 각종 협력 과제를 더 주도적으로 추진해 주길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비핵화 대화 진전을 위한 중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6일 서면 인터뷰에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서면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또 문 대통령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 중의 하나로 남북 경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아직까지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은 실질적 결실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생각은 '영변+α'가 실행돼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다. 또 '미국이 먼저 계산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은 '북한이 조속히 대화에 복귀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요구와 배치된다.

【오사카(일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일본 오사카 국제컨벤션센터 인텍스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2019.06.28. pak7130@newsis.com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 진행되는 한중, 한러,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 대화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7일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지난 20~21일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면서 비핵화 대화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북미 양측의 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3차 대화(북미 정상회담)를 지지한다"며 협력적인 자세를 취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에도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28일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통한 해법을 지지하고 북한을 설득해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문 대통령은 오는 29일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북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최근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9일 "북미 양측 모두 협상에 있어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이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북한 비핵화 진전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아시아 순방과 방한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아마도 다른 형식으로 그와 대화할 지도 모른다(but I may be speaking with him in a different form)"고 여지를 남겼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김 위원장과 전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진전된 제안을 던지면서 실무협상이나 정상회담을 제의할 경우 비핵화 협상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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