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 공세, 곤란한 답변 유도에도 차분…노영민 '국회 데뷔전'

기사등록 2019/04/04 18:46:39 최종수정 2019/04/04 18:52:21

검증 책임 공세 앞선 선제 사과…즉문즉답 '3선 의원' 노련함도

'때론 발끈' 임종석과 다른 스타일…감정 기복 자제하며 '방어'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이 답변을 논의하고 있다. 2019.04.04. jc4321@newsis.com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4일 국회 데뷔전에서 3선 의원의 노련함으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났다. 언성을 높이는 야당 의원 앞에서도 차분하게 대응했다. 인사검증 실패책임론을 앞세운 야당 공세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노 실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지난 1월8일 비서실장 임명 이후 첫 국회 출석이었다. 대중 앞에 장시간 모습을 노출한 것도 처음이었다.

노 실장은 전날 밤 늦게까지 운영위에서 제기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꼼꼼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반복 연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실장은 본격적인 질의에 앞선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말 순서에 국민 눈높이에 견줘 장관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사과했다.

노 실장은 "최근 인사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추천위원장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인사추천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검증을 보다 엄격히 해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이어 "겸허한 마음으로 더욱 분발하겠다"며 "대통령 비서실은 국민의 목소리, 국회의 목소리를 더욱 무겁게 듣고 대통령을 보좌하겠다"고 다짐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조국 민정·조현옥 인사수석을 경질하라는 야당 공세 대응과정에서 오히려 '포르쉐 발언'으로 논란을 키우자 노 실장이 직접 진화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향후 질의과정에서 이어질 야당의 공세 수위를 낮추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볼 수 있다. 불필요하게 버티다가 화를 키우기 보다는 낮은 자세와 빠른 사과를 통한 상황 수습이라는 전략적 판단도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노 실장은 질의 초반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도 막힘없는 '즉문즉답'을 하며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과의 문답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김 의원은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의 판단 주체, 김의겸 대변인의 관사 사용 승인 주체, 관사 사용지침 자료 미제출 사유 등 여러 질문을 빠른 템포로 던졌다. 주변으로부터 도움받을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노 실장은 평소 말투가 느린 편이지만 김 의원의 질문 호흡에 맞춰 빠르게 답변했다. 후보자 임명 판단을 위해 국회에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한다는 것, 관사 사용은 총무비서관의 역할이라는 것 등을 막힘 없이 답했다. 3선 의원 출신의 노련함이 묻어나왔다.

답변에 따라 파장이 커질 수 있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평소 모습대로 신중함을 유지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임명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끌어내고자 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일관되게 거리를 뒀다.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2019.04.04.since1999@newsis.com

강 의원은 "차관 후보자가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면서도 차관 임명에 협조했다면 그런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질 사유라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노 실장은 "가정을 전제로 한 답변은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노 실장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대표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이 자리에서 답변하기가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며 "답변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비서실장의 위치에서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잘못 답변할 경우 자칫 수사 개입 내지는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처사로 풀이된다.

노 실장은 '소통을 하겠다면서 도대체 누구와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과 통하겠다는 것인가. 소(牛)와 통하겠다는 것인가'라는 김정재 한국당 의원의 자극성 질문 앞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노 실장의 이런 모습은 전임인 임종석 전 실장이 과거 운영위에서 보인 모습과 대비된다는 평가다.

임 전 실장은 과거 나경원 한국당 의원의 "양두구육 정권"이라는 비판에 "지나친 말씀"이라고 불쾌감을 표현한 바 있다.

또 "전대협 인사들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다"는 전희경 한국당 의원의 주장에는 "그것이 질의인가. 매우 유감"이라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나. 국민의 대표 답지 않다"고 정면 대응 했었다.

청와대에서는 임 전 실장의 운영위 답변 스타일을 두고 '아웃복서'에 비유하곤 했다. 특유의 넉살로 굽힐 때는 확실히 굽히다가도, 싸울 땐 정색하고 맞서 싸우는 모습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노 실장은 임 전 실장과 비교해 한층 무게감이 있었다. 첫 운영위에서의 답변 과정은 대체로 감정 기복 없이 차분하게 야당의 공세를 막아냈다는 점에서 무난한 데뷔전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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