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마약반 다섯 멤버인 ‘고 반장’(류승룡), ‘장 형사’(이하늬), ‘마 형사’(진선규), ‘영호’(이동휘), ‘재훈’(공명)은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마약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 장사가 너무 잘 돼 ‘자영업자인지, 경찰인지?’ 헷갈리곤 한다. 이와 달리 영화는 작품성을 고민하지 않은 채 오직 웃음만 공략했다. 누적관객 1500만명을 넘기는 대성공작이 됐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웃음에만 집중
‘극한직업’은 한길만 팠다. 메시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철저하게 웃음에만 집중했다. 기존의 코미디 영화에서 선보인 공식 아닌 공식, 마지막에 감동적인 눈물 한 방울도 넣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병헌 감독의 내공이 빛을 발했다. 영화 ‘스물’(2014)과 ‘바람 바람 바람’(2017) 등에서 선보인 이병헌표 B급 코미디는 탄탄한 시나리오, 센스 있는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조화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전부터 각색 잘하기로 유명했던 이병헌 감독은 어느새 한국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여기서 한 번 더 웃기겠지?’ 예상하면 한 번 더 틀어서 두 번, 세 번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다.
‘극한직업’은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편으로 씁쓸함을 자아냈다.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2017)와 ‘베테랑’(감독 류승완·2015)을 적절히 섞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디서 본 듯한 흥행 법칙이 여기 저기서 발견됐다. 아울러 ‘정말 웃긴데 1000만명을 넘을 영화인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영화 제작사 대표는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2018·누적관객 993만명)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했지만, ‘극한직업’과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극한직업’은 분명히 재미있고 웃기지만,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명작은 아니다. 흥행작일 뿐이다. 그래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라고 짚었다.
영화가 호평을 들으면서 배우들의 호감도도 높아졌다. ‘극한직업’은 진선규(42)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다. 전작 ‘범죄도시’와 180도 다른 캐릭터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무시무시한 조선족 깡패 ‘위성락’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섬세한 연기와 풍부한 표정, 찰진 애드리브로 호평을 이끌었다. 하지만 류승룡(49)은 기존의 작품과 별다를 게 없는 생활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2013)에서 연기한 ‘용구’를 떠올린다. ‘류승룡은 또 류승룡 연기를 했다’는 평이 잇따랐지만,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등이 유행어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심지어 이하늬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연기를 잘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베테랑’에서 장윤주(39)가 소화한 ‘미스 봉’과 같은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지만, 극찬할만큼 연기를 잘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동휘(34) 역시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2016) 속 ‘동룡’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관객들의 평가는 주관적이지만, 보통 작품이 재미 있으면 배우들의 호감도가 올라간다”며 “그러면 ‘연기도 잘했다’는 호평 일색으로 흘러가고, 이러한 현상은 대중 착시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고 짚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한국영화결산에서 “순제작비 65억원의 ‘극한직업’은 겨울 성수기에 볼만한 영화가 없어 영화 관람을 미룬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다”며 “12월과 1월의 관객 감소분에 설 대목 관객까지 모두 가져간 결과”라고 분석했다. ‘극한직업’은 개봉일인 지난달 23일 스크린 1552개에서 8459회 상영됐다. 개봉 첫 주 주말인 27일 스크린수는 1978개에 달했고, 이후 폭발적인 흥행세가 이어져 일별 상영점유율 40% 이상을 유지했다.
물론 CGV는 아무리 같은 계열인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배급해도, 관객들이 많이 보지 않으면 내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CJ는 ‘관객들이 ’극한직업‘을 보고 싶었는지, 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관객들이 ‘예매할 때 상영 시간표를 보고 대기업의 거대 자본에 혀를 내둘렀는데, 영화 말미 류승룡이 ‘소상공인들은 목숨 걸고 장사해’라고 할 때 기가 찼다’고 비웃는 까닭이다.
관계자들은 ‘‘극한직업’은 CJ의 1000만 영화 만들기 노하우가 발휘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CJ는 ‘극한직업’ 전까지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2009), ‘광해’(감독 추창민·2012), ‘명량’(감독 김한민·2014), ‘국제시장’(감독 윤제균·2014), ‘베테랑’(감독 류승완·2015)까지 1000만 영화를 5편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최 평론가는 “‘극한직업’은 충분이 재미있고 그만큼 가치가 있다”면서도 “이런 돌풍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부작용도 우려된다. CJ는 대자본이 스크린 수를 장악하고,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 우려 먹을 수 있는지 노하우를 너무나 잘 안다. 온라인 댓글보다 더 심각한 현상으로 다양성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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