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간 비건 미 특별대표 '종전선언' 카드 관철하나

기사등록 2019/02/07 10:59:20

비건의 이례적 평양행 의미심장

우리 정부, '종전선언 없이 평화협정' 우려하는 듯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6일 오전 숙소인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을 나서고 있다.   비건 특별대표는 2차 북미정상회담 세부조율을 위해 평양을 방문해 북측 상대인 김혁철 전 스페인 대사와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놓고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2019.02.06.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간지 7일로 이틀째다. 오는 27·28일 열릴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협상을 하는 중이다. 언제까지 평양에 머물지를 미리 정하지 않고 갔다고 한다. '끝장협상'의 대결전(大決戰)을 각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건 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간 것은 이례적이다. 실무협상은 밀고당기기를 거듭하면서 입장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언제 타결될 지를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또 무엇을 양보하고 얻어낼 지를 본국에 보고해 가면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협상은 협상 당사자들이 본국과 소통이 손쉬운 제3국에서 열리는 것이 통상적이다.

특히 적국 상태인 미국과 북한이 벌이는 핵협상은 지금까지 상대국가에서 열린 전례가 사실상 없다. 미국에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한 북미간 채널도 직접 협상을 담당한 적이 거의 없으며 단지 평양과 워싱턴의 훈령을 본국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만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양과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이들은 본격적인 협상을 하기보다 정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사의 성격이 강했다.    

비건 특별대표의 '이례적인' 평양행은 국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 한 언론은 지난 1일 비건 특별대표가 6일 평양으로 가 실무협상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6차례 열린 실무협상에서 북측의 본국 보고 문제로 협상이 지연된 것에 미국이 크게 실망했으며 평양에서 협상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침이 즉각 전달돼 협상이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평양 실무협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하루 뒤 국내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르면 4일부터' 평양이 아닌 '판문점'에서 비건 특별대표-김혁철 북한 대사간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외교소식통이 의도적으로 흘린 내용이다. 비건 특별대표의 평양행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인 듯했다.

북미가 이미 평양 실무협상에 합의한 상황인데도 이를 바꿔보려 시도한 것이다. 평양에서 진행되는 협상 내용을 우리 정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점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비건 특별대표가 평양으로 간 6일에서야 실무협상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마지못해 환영입장을 표명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비건 특별대표가 서울에서 3일을 머물다 평양으로 간 것도 우리 정부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행보로 추정된다. 사전에 최대한 우리 정부와 조율한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과 협상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정부가 평양 협상을 꺼린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또 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해 8월 취임한 이래 빈번히 한국을 방문하면서 협상내용을 가다듬어왔다. 그렇게 만든 협상 방안을 지난해 연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았고 지난 18일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에게 알렸다. 또 스웨덴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그런 그가 북한과 실무협상을 앞두고 지난 1월 31일 스탠퍼드대에서 미국의 입장을 상세하게 밝히는 연설을 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연설에서 미국의 입장이 여러 면에서 크게 변화했음을 강조했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FFID)'가 이뤄지기 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그러나 미국의 입장을 문제 삼으며 협상을 지연시켜 왔다. 제재 완화 내지 해제가 없으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분위기였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지난 1월 18일 트럼프 미 대통령을 찾은 것은 바로 이같은 입장을 '최후통첩'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북한의 강경 입장을 눈치 챈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모든 우려사항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보고 받은 김정은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믿고 인내심과 선의의 감정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라면서 "조미(북미) 두 나라가 함께 도달할 목표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함께 나갈 것"이라고 반응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에 배석했던 비건 특별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영변과 기타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생산시설 폐기와 그 이상도 하겠다고 약속했음을 처음 공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동시적 병행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동시적 병행조치"는 북한이 강조해온 표현이다. 또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를 완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북한의 완전한 핵신고를 늦출 수 있다고도 했다.

보다 높은 협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미국도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특히 연설을 마친 뒤 질의 응답과정에서 비건 특별대표는 "우리의 정책을 바꿈으로 해서 북한이 정책을 바꿀 수 있는지를 시급히 외교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전쟁을) 종식시킬 준비가 돼 있다. 이미 끝난 전쟁이다. 우리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은 70년 전의 전쟁과 적대를 한반도에서 끝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평양 협상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할 생각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하자는 제안을 지난해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이 제안에 그리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다. 말로만 하는 정치적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실무협상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종전선언을 제안할 경우 바로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맞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전협정에는 미국과 중국, 북한만이 서명했다. 따라서 종전선언 과정이 생략되고 바로 평화협정으로 넘어갈 경우 우리나라가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줄곧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평화협정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선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이 최우선적인 과제는 아닐 수 있다. 외교소식통이 마지막까지 비건 특별대표의 평양행을 견제한 이유는 바로 이를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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