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협상 교착 장기화…'무응답' 北의 의도는?

기사등록 2018/11/26 10:20:47

27~28일 북미 뉴욕회담 개최 불투명

북의 전략적 속임수에 대한 의심 확산

입장 확인 위한 시험적 조치 검토 필요

【서울=뉴시스】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고 밝히고,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출처: 폼페이오 트위터> 2018.10.07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북미 고위급회담을 27,28일 뉴욕에서 개최하자고 미국이 제안했으나 북한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도 최근 예정된 회담이 없다고 밝혀 북한이 답변하지 않고 있음을 간접 확인했다.

북미 핵협상 교착상태가 마냥 길어지고 있다.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실천방안 마련을 위해 10월초 평양을 찾은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희망적인 답변을 들은 것으로 공개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실무협상은 물론 고위급회담까지도 외면하고 있다.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정착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돼 온 큰 행사들이 늦춰지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매우 파격적인 비핵화 의사를 누차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런 언급이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완화 또는 종전선언과 같은 분위기 조성용 유인책이 필요함을 강조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좌절된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한미간에 의견 충돌을 관측하는 보도가 이어졌으며 결국 한미는 '워킹그룹'을 가동키로 합의함으로써 이견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워킹그룹은 지난주 첫 만남에서 남북 철도 공동조사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지난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이 제재 예외 적용을 발표했다. 한미 양국은 또 올해 실시를 유예한 독수리 군사연습을 내년도에 절반 이하로 축소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에 응하도록 설득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되는 조치들이다.

이런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래도록 침묵하는 북한의 의도를 해석하는 관측이 줄을 잇고 있다.

북한의 의도 관측은 조심스럽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보도를 주시하면서 때때로 자신들의 대응에 반영한다는 정황이 자주 확인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이 각각 연내 남북정상회담, 내년초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것은 북한이 그런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을 쉽게 만드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북한이 취했거나 취할 것으로 제시한 각종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이 제시하지 않는 한 북한의 침묵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여럿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북한의 일관된 제재 해제 요구다. 북한은 9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계기를 통해 제재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북한보다 앞서서 실질적 핵폐기 없이 제재 완화 내지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점이다. 북한도 이를 익히 아는 상태에서 제재 해제를 내세우는 건,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가 전략적 입장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전술적 입장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상황이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시간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협상 전략상 북한도 '시간이 미국 편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직간접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미국의 협상 자세가 아직 진지하지 않다고 보고 그렇다면 북한도 제갈 길을 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침묵이 전술적인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완전한 핵폐기 의사가 있음을 이미 공언한 상태이므로 미국이 양보만 하면 핵협상이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가 전략적인 것이므로 미국이 양보하는 상황에서도 핵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북미 핵협상 성과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초 신년사에서 핵무기의 대량 생산하겠다고 밝힌 것을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핵협상이 고착된 사이에 북한은 이미 충분한 실험 과정을 거친 핵무기와 미사일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것이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전략적인 "대사기극"(미 뉴욕타임스)을 벌이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북한의 전략적 입장은 핵포기가 아닌 핵무력 강화이며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이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시간벌기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입장이 전술적인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것인지는 앞으로 한두달 사이에 판단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고위급회담을 계속 무산시키다가 결국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태도는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관측을 일단 뒷받침한다. 북한은 공을 미국 쪽으로 넘겼으니 미국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할 차례라는 입장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조야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까지 북한이 전략적으로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판단으로 기울게 되면 상황이 급전직하할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북한이 협상으로 시간을 벌면서 강화한 핵무력으로 지난해의 '화염과 분노'가 재연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북한의 협상 지연이 전술적인지 아니면 전략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양국, 특히 미국은 보다 과감한 조치를 시험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만에 하나 북한이 전략적으로 핵무력 강화를 도모하면서 협상을 악용한 것이 분명하다면 이를 선명히 밝혀줄 근거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조차 없이 다시 '화염과 분노'로 선회하는 것은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관련국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와 미국내에서 비판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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