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인터뷰]이성열 예술감독, 블랙리스트·미투···'해결사' 1년

기사등록 2018/11/12 11:57:41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고3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인 것은 처음이네요. 하하."

이성열(56)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지난해 11월 부임 이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연극을 만들어내는 '본업'은 물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미투' 등 산적한 과제들을 돌파해왔다. 국립극단 명의로 사과 성명만 몇 차례 냈다. 점차 연극계 안팎에서 국립극단이 안정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이 감독은 "현장 연극인들과 굉장히 많은 소통의 길을 찾고자 했어요"라면서 "극단 작품에 참여하지 못한 작가, 연출, 그리고 원로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여러 사안에 대해 현장 예술가들이 미흡하다고 이야기를 해요. 원인을 해결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죠. 예술계 치유를 위해서 다같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이 감독은 바쁜 상황에서도 새 사업을 일궜다. 젊은 극작가들의 창작 희곡을 상시 접수하는 플랫폼 '빨간 우체통', 연출가 개인이 천착해온 미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출의 판', 연극성이 살아있는 전통연희들을 발굴하는 '우리연극 원형의 재발견' 등이다.

국립극단 소속 세 극장의 정체성도 분명히 해나가고 있다.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은 각각 작가와 연출 중심으로 꾸리고 있다. 명동예술극장은 관객 중심으로 하되 고급 연극을 선보인다.

연극 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기 위해 서계동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북은 무료로 제공한다. 명동예술극장 프로그램북은 유료지만, 온라인에서 무료로 내려볼 수 있다.

이 감독은 국립극단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연출작으로 택한 '오슬로'로 연출력과 흥행성도 인정받았다. 미국 극작가 J T 로저스(50)의 작품으로 최근 명동예술극장 무대가 아시아 초연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인 '오슬로 협정'의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평화 협상의 지난함이 한반도의 현재와 맞물리며 호응을 얻었다.

이 감독은 '오슬로'가 행운의 작품이라고 한다. "잘 씌여진 작품이에요. 서사, 템포, 주제 의식이 좋죠. 이번에 참여한 배우들도 적역을 맡았고요. 그런데 시의성이 안 맞았으면 다른 나라 이야기로 그쳤을 겁니다. 작품이 주목 받는데 시대와 만나는 지점이 컸죠."
 
이 감독은 국립극단이 동시대적인 질문과 고민에 답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를 바란다. "'오슬로'가 명동예술극장에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을 해주더라고요.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사 말이에요."
이 감독은 처음 계획한대로 남은 2년 임기를 채워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올해 초 국립극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내용은 2010년 7월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할 당시 그가 써낸 축하 글에도 포함됐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이 감독이 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국립극단의 70주년이다. 1950년 국립극단 전속극단으로 출발한 신협시대를 포함해 국립극단은 2020년 70주년을 맞는다. 이 감독은 북한의 극단과 교류, 굵직한 해외 공연 단체 초청 등을 계획 중이다.

이 감독은 자신이 오기 전에도 극단은 안정돼 있었다면서 정치적, 사회적 현안이 밀어닥쳐도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외풍과 내풍에 중심을 잃지 않고 제작극장의 정체성을 잡아야 해요"라는 얘기다.

이 감독은 국립극단 법인화 이후 3대 예술감독이다. 제1대 손진책(71) 예술감독은 기반을 마련하고, 2대 김윤철(69) 예술감독은 해외 유통 플랫폼 창구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감독은 여기에 잘 짜여진 순환구조를 더하고 싶다. 그러면서 극단을 '빵 만드는 공장'에 비유했다. "빵만 잘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만든 사람, 살 사람이 잘 만나게 하는 유통 구조를 잘 만들어야 해요"라는 것이다. 창작자, 관객 양쪽 모두를 감안하겠다는 자세다. 
 
"먹는 사람 입맛에는 보리빵이 맞는데 옥수수빵을 만들면 안 되죠. 필요로 하는 빵을 잘 유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야 하는 이유죠. 관객, 예술가 사이에서 빵 공장 역을 잘 하고 싶어요. 네트워킹을 잘해서 순환구조를 잘 만드는 것이 예술감독이 해야 할 일이죠."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