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군사분야합의서 대통령發 비준…문제 없나

기사등록 2018/10/23 16:55:23 최종수정 2018/10/23 17:00:39

판문점선언 국회 계류 중인데 부속합의 비준 절차 나서

남북합의서 국회 동의 여부 두고 법적 관점 '팽팽' 대립

남북협력 속도전 원하는 靑기조 맞춘 법령 해석 지적도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8.10.23.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지현 홍지은 기자 =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에 나섰다.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도 전이라 청와대가 앞서 나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의결했다. 이후 관보에 게재하는 공포 절차를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비준한 두 합의서는 판문점선언과 달리 국회에 제출되지 않는다. 통일부는 위 합의서 비준에 대한 국회 동의 여부를 따지기 위해 법제처에 해석을 의뢰했고, 법제처는 심사를 통해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제21조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의 경우 판문점선언 이행 성격이 크며, 판문점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별도로 국회 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분야 합의서 역시 남북관계발전법상 국회 비준 동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로 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위 합의서를 공포하면 남북 정상 간 공동선언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이는 향후 필요한 예산 확보, 법률 재·개정의 근거가 돼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거라고 정부·여당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비준을 두고 정치권 안팎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위 합의문 성격인 판문점선언이 지난달 11일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속 합의인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를 먼저 비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감대책회의에서 "부속합의서에 해당하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에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어느 나라 엿장수의 논리인가"라며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법제처의 법령 해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두 합의서가 국회 동의를 요하는 선언문인지에 대한 견해도 팽팽하게 나뉜다.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18.09.19.photo@newsis.com
우선 남북 정상 간 합의는 의제를 포괄적으로 담은 것으로, 구체적·확정적으로 사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남북합의서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다.

 즉, 선언적 합의 그 자체만으로는 재정부담 여부, 규모, 방법을 확정할 수 없고 입법사항 여부도 결정할 수 없어 국회 동의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제처는 이같은 이유로 10·4공동선언에 대해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봤다.

 청와대 설명도 이와 유사하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도 원칙과 선언적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건 없었다"며 "구체적이고 새로운 남북 부문 간 합의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만들 때는 국회(동의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선언 자체만으로는 소요되는 재정 범위를 예측하기 어려워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정부가 선언 이행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미 마련된 재원마련계획 등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부담이 없다고만 간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선언적 합의에 대해 국회 동의권을 인정할 경우, 이후 모든 부속합의에 대해서도 국회 동의가 요구돼 남북 교류·협력의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이에 남북 협력사업을 속도전으로 추진하려는 청와대의 기조에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법제처가 법령을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가 되기도 전에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서두르는 데 대한 의구심과 관련,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성격도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선언"이라며 별개의 사안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7년에도 남북총리회담 합의서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후속 합의서인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서해평화협력특별위추진위원회, 국방장관회담 합의서 등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비준된 사례가 있다"고 예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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