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국민연금 개혁했나…30년 논의 끝에 '국민합의'

기사등록 2018/08/22 09:40:23

2015년 공무원 연금과 후생연금 통합 조치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보험료 인상

수명연장 및 출산율 감소와 연동되는 장치 도입

【도쿄=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일본은 5년에 한 번 연금제도를 검토 수정한다. 1994년까지는 연금보험료를 조금씩 올려왔다. 하지만 1999년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강하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자민당은 일단 연금보험료를 동결시켰다. 기초연금 개념인 국민연금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고 정치권도 동조했다. 국민 여론을 의식한 무책임한 인기 발언들이 판을 쳤다.

 1989년부터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30년은 '일본 연금의 격동기'로 불린다. 연금 개정을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였다.

 일본도 연금 개정 때가 되면 정치권과 정부, 노조 등 사회단체들이 얽혀 일대 난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만큼 연금은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인데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까지 겹치고 경제상황마저 녹록치않게 되면서 대부분의 가입자가 부담을 더 져야 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30여 년간 치열한 토론과 조정 과정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냈다.

 ◆ 2004년 대대적 연금 개혁 단행
 
 일본의 공적연금은 크게 2층 구조로 나뉜다. 전 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과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이다. 국민연금은 20세부터 월 1만 6900엔을 40년간 납부하면 65세 이후부터 월 6만 5000엔을 받는 정액제 연금이다. 후생연금은 급여 소득의 18.3%를 회사와 절반씩 나눠 붓는 연금으로 40년 만기다.

 일본은 2015년 공무원연금을 후생연금에 통합했다. 공무원연금이 후생연금과 비교했을 때 급여 차도 크고 국가 재정 부담이 크다는 비판은 1980년대부터 있었다. 연금 개정 때마다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공무원, 교원 등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이대로 가면 국가재정이 위험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모아지면서 통합이 가능하게 됐다.

 이같은 개혁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 2004년 연금 개정이다. 1999년에는 국민들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쳤지만 5년 후 대대적인 연금개정에 나선 것이다.

 후생노동성이 내놓은 안을 놓고 여야 정치권, 경제계와 노조 등이 격론을 벌인 끝에 최종 확정된 내용은 급여의 13.58%였던 연금보험료를 2004년 10월부터 매년 0.354%씩 올려 2017년에는 18.30%으로 고정시키고, 지급 연금액은 현역 남자 평균수입 59.3%에서 2023년까지 50.2%까지 낮추기로 했다. 최저 50% 수준 지급은 국가가 보증하기로 했다.

 그리고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 등에 연동해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장치인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연금제도를 지속가능하게 하면서도 “우리는 돈만 내냐"는 젊은 세대들의 불만을 감안한 방안이었다.  
    
 당시 연금 개정을 주도했던 후생노동성 출신의 와타나베 요시키(渡辺芳樹)씨는 지난 7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금개정을 한다면 한 번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최종 보험료 20%가 될 때까지의 스케쥴을 전부 하나의 법안으로 내놓자고 주장했다“면서 ”경제계는 15~16%를 주장했지만 총리실, 여당 등의 조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8.3%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고이즈미,연금개혁 후 선거 참패
 
 연금 개정을 주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당시 총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뤘다. 연금 개정 발표 다음달인 2004년 7월에 치뤄진 참의원 선거에서 그가 이끌던 자민당이 참패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참패 이유로 '연금개정 강행'을 이유로 꼽은 비율이 43%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78%는 "연금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국가재정이 파탄나지 않으려면 후생연금과 공무원 연금도 일원화해야 한다"며 연금 개정의 뜻을 꺾지 않았다. 

 일본 공적연금은 이미 2002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당시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100년까지 필요한 연금지급액은 740조엔(약 7500조원)으로 부족액이 480조엔(약 48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돈은 더 내고 받는 돈은 줄이는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단계적으로 계속 손을 보아온 것이다. 

 이때 마련한 개정안을 토대로 연금 개정을 실시해온 일본은 현재 2004년 당시 급여의 13.58%였던 보험료를 2017년까지 점진적으로 18.3%까지 인상한 뒤 고정됐으며, 2015년에는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처음 도입돼 지급 연금액도 조정됐다.

 2015년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실제로 도입됐을 당시 국회에서 야당이 "물가는 오르는데 연금액이 줄어들면 고령자의 생활은 어떡하냐"고 따지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연금은 지급과 부담의 밸런스로 장래 세대의 부담을 과중하게 하는 일을 피하면서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보험료 수준을 고정했다"며 "(연금지급액 조정은) 장래에 걸쳐 연금이 노후의 소득보장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야당의 이해를 구했다.

 ◆공적연금 수익률 6.9%…국민 불만은 여전

 지속적인 연금개정을 해왔지만 일본 국민들의 불만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대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젊은 세대들의 부담이 더 큰 구조이기 때문이다. 2004년 연금 개정 당시 국민연금 국고지원 비중을 기존 1/3에서 2009년에 1/2로 확대하기로 했는데 국고보조 역시 젊은 세대의 부담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현행 65세인 후생연금의 개시 연령을 68세로 올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약 1700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한국은 약 630조원으로 세계 3위다. 일본은 공적 연금을 100% 민간에 위탁해서 운용한다. 전문가 집단으로 이뤄진 공적연금펀드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에게 맡겨 운영,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GPIF의 공적연금 운용은 10조7208억엔(약 108조 8300억원, 수익률 6.9%)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

 yunch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