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동물사체실험, 새로운 증거·직접증거 아니야"
경찰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 종결은 아니다" 수사 계속
경찰은 발달한 과학수사 기법으로 9년만에 재수사에 착수해 박씨를 체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추가 신병확보에는 실패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9년전 알리바이를 입증할 '스모킹건'으로 꼽힌 동물사체실험 결과가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서 수사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법원이 동물사체실험 결과 외 경찰이 제출한 여러 정황근거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며 증거능력을 부정해 이번 사건은 피해자만 있고 범인은 없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오후 11시27분께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양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주장이나 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기는 하나, 제출된 자료들을 종합할 때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는 범죄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본 근거로 "피해자의 사망시점이 2009년 2월1일께라는 최근의 감정결과를 전혀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그는 "거짓말탐지기 검사와 POT 검사(긴장정점 검사) 및 뇌파검사 등의 결과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약 1시간후 박씨는 기자들에게 "지금 몹시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동부경찰서 유치장 밖을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김기헌 제주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경찰은 9년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의 종결은 아니므로 경찰은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지난 4월25일 제주경찰청 2층 한라상방에서 공식 브리핑을 통해 동물사체실험으로 9년전 숨진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여)씨의 사망시간을 달리 볼만한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발표했다.
이후 경찰은 마침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며 피의자 신병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강원도의 모처에서 오랫동안 생활던 박씨는 경찰이 동물사체실험을 벌이던 기간에 갑작스레 경북 영주시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조사를 통해 박씨가 증거물들을 들이 밀때마다 "조금 당황하기도 하고, 진술을 못 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여 왔지만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모두 채택되지 않으면서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사건은 2009년 2월 보육교사였던 이씨는 실종 8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씨는 실종 하루전인 같은해 1월31일 여고 동창생과 만나 제주시내 주점에서 술을 마신 후 다음날 오전 3시3분께 남자친구에게 문자메시지 1개를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실종 닷새째인 2월6일 이씨의 가방이 제주시 아라동 은성사회복지관옆에서 발견됐다. 이후 2월9일 가방이 발견된 곳과 30㎞ 떨어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이씨는 숨진 채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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