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금장치 확인만 몇번"…여전히 두려운 공공화장실

기사등록 2018/05/17 16:24:20

강남역 살인사건 2년, 여성화장실 안심대책에도 불안

화장실 내부 비상벨 없고 민간화장실은 관리도 어려워

전문가들 "화장실 기준 마련 및 여성혐오 인식 타파 필요"

【서울=뉴시스】천민아 수습기자 = 17일 낮에 찾은 강남역 일대 여성안심화장실(좌)과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 모습. 2018.05.17.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류병화 천민화 수습기자 = 직장인 장모(28·여)씨는 왠만하면 밖에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부터다. 장씨는 "공용화장실에 가면 누군가 문을 확 열 것 같아서 잠금장치를 몇번이고 확인해본다"며 "잠금장치가 허술하다 싶으면 아예 참고 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친구들끼리 만남 장소를 정할 땐 화장실이 '괜찮은 곳'인지가 우선순위가 되기도 한다. 장씨는 "원래부터 화장실이 깨끗하고 안전한 곳을 좋아했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로는 아무래도 더 화장실에 신경쓰게 된다"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됐다. 시민단체와 여성계 등의 요구에 여러 지자체에서 '화장실 대책'을 내놨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공중화장실 사용을 꺼리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5개 지하철역 주변은 '안심존(Safety Zone)'이 구축됐다. 남녀 화장실 분리·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 조도 등을 기준으로 화장실 180곳을 '여성안심화장실'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여성안심화장실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회사원 강모(27·여)씨는 "화장실이 밝거나 밖에 CCTV가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라며 "오히려 칸막이 내부에서 누군가가 의심될 때 티안나게 신고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게 낫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역 인근 여성안심화장실 9곳 중 7곳에는 화장실 내부에서 위협을 느낄 때 이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서울=뉴시스】류병화 수습기자 = 17일 낮에 찾은 서울 마포구 일대 한 공중화장실(좌)과 여성화장실에 부착된 비상벨의 모습. 해당 공중화장실은 근린공원 주변 등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여성화장실에 부착된 비상벨은 화장실 입구에 부착돼있다. 2018.05.17.
그나마 살인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른 강남역 일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클럽과 술집 등이 밀집한 대표적 유흥가인 마포구 일대에는 여성안심화장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공중 여성화장실 9곳에 비상벨이 설치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고, 비상벨은 화장실 입구에 부착돼있어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 건물이나 상가에 있는 화장실은 더욱 열악하다. 여전히 남녀가 모두 이용하는 공용화장실로 운영되는 곳이 있고, 민간화장실이라는 이유로 지자체 관리도 강제되지 않는 탓이다. CCTV나 비상벨 설치 등의 기본적 안전조치가 업주들 재량인 탓이다.
 
 실제로 17일 낮 홍익대 부근 가게 8곳을 둘러본 결과 3곳이 공용화장실이었고, CCTV가 설치된 곳은 5곳,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전무했다. 

 홍익대 주변 노래연습장 직원인 이모(28)씨는 "비상벨을 설치하려면 새로 선을 따고 몰딩도 새로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피해자 20대 여성은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본인이 평소에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용의자 김모씨에게 흉기에 찔려 숨졌다. 2016.05.18. mangusta@newsis.com
전문가들은 화장실 시설 관리 기준 마련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여성혐오 인식을 타파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승남 중앙대학교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화장실 관리의 최소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남녀 화장실이 어느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며, 최소 유지돼야 하는 밝기는 어느정도인지,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려면 어떻게 설계해야하는지 등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기본적으로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며 "심지어 최근에는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만 봐도 화장실 관리 대책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화장실 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성혐오 인식 개선이 먼저"라며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 의식, 여성혐오 인식을 타파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newki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