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미투운동 모두 '불공정' 문제 해결 움직임
'남북단일팀' '팀추월' 등 평창올림픽 논란 중심에도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의 평등…문제 제기 계속돼야"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지난해 3월 10일 아침은 쌀쌀하고 낮은 따뜻했다.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일교차가 큰 초봄 날씨였다. 평소 같았으면 학생들과 직장인들 모두 그날의 점심 식사메뉴를 고민하고 있을 때인 오전 11시께. 그날은 달랐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 마련된 텔레비전 앞에서, 혹은 저마다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차에 몸을 실은 이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전 11시22분, 모두가 숨죽였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렇게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당시 이정미 권한대행과 주심 강일원 재판관 등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5월 대선이 치러졌고 10여년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제1야당으로,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청와대에 속속 입성했다.
달라진 것은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사회도 달라졌다. 곳곳에서 '공정'과 '평등'을 외치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의 대학입학 특혜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한 분노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지지 움직임에 불을 지핀 만큼 '평등'·투명'·공정'에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온·오프라인상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대표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익명게시판이나 직접 자신의 실명을 드러내놓고 성폭력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에 지지댓글을 보내고 "용기를 얻었다"는 이들의 추가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촛불집회는 권력의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했고, 미투운동이 성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실제로 유력 차기 대선주자까지 자리에 물러나게 하는 등 힘을 합치면 정치사회적 부분에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모두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인 만큼 앞으로 나이, 직업 등 더욱 다양한 층위에서 존재하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움직임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27일 폐막한 평창동계올림픽도 주목할만하다는 분석이다. 준비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됐던 사건들 모두 '공정성'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경우 남북단일팀 구성으로 인해 남측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줄어든다는 논란이 일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단일팀 발표 후 조사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64%로 취임 후 최저치였다. 남북단일팀 구성의 여파였다.
올림픽 과정에서 여론을 들썩이게 한 논란들도 모두 공정과 평등이 키워드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남자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뒤 윤 선수의 부모도 입장하지 못한 피니시 라인에 들어가 응원을 한 모습이 포착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 의원은 시민단체로부터 검찰 고발까지 당했다.
'왕따 논란'이 일었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대학출신 별로 훈련장소가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해묵은 빙상계 파벌 싸움에 따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승훈 선수에게 매스스타트 올림픽 초대 챔피언 영광을 안겨준 정재원 선수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공분을 일으켰다. 소위 '잘 나가는 선수'에게 다른 선수들의 희생된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남북단일팀으로 구성부터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논란까지, 젊은층이 분노했던 것은 모두 다름 아닌 '공정성'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모두 평등한 위치에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탄핵 이후 그만큼 공정성, 기회에 대한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정성과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전방위적으로 나오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공정성이나 평등이란 민주주의적 가치가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국정농단이나 성폭력, 왕따 논란 등은 지금껏 드러났던 것은 비교적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들이었지만 사실 우리 일상 속에는 눈에 띄지 않은 불평등이나 불의가 더 많다"며 "이를 모두 해결했을 때만이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임 교수는 인내를 당부했다.
임 교수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처벌할 수 있는 법이나 규제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 의식 부재인데, 문제는 일상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 의식을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내고 지적하는 과정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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