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암매장' 입증하는 군 문건·계엄군 증언 잇따라 나와

기사등록 2017/09/18 09:46:41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들이 광주교도소 내에 시신을 직접 암매장했다는 진술과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에 다시 내려가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사진은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 검토보고'라는 군 문건. 이 문건에서 5·18 당시 3공수여단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된 이모씨는 '광주교도소 내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7.09.18. (사진=독자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들이 광주교도소 내에 시신을 직접 암매장했다는 진술과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에 다시 내려가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본격적인 조사와 5·18기념재단의 4차 암매장 발굴 조사, 5·18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등을 앞두고 5·18 암매장에 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8일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 검토보고'라는 군 문건에는 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된 이모씨의 증언과 군이 이를 사실로 검증한 내용이 적혀 있다.

 문건은 1989년 1월 '511분석반'이 작성했다. 511분석반은 지난 1988년 국회 5·18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보안사가 5·18의 진실을 덮기 위해 만든 비공개 불법 조직이다.

 이 문건은 이씨가 1989년 1월 당시 평화민주당을 찾아가 "교도소에 직접 암매장했다"고 제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씨의 구체적인 신고 내용도 적혀 있는데 "신고자는 5·18 당시 3공수여단 본부대대 일등병으로 광주 진압 작전 참가. 5월21일 오후 5시쯤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 철수 시 부식 냉동차에 싣고 온 시위대 40여명을 교도소 창고에 집단 수용. 5월22일 새벽 이들 중 중상자 4명이 죽어 있는 것을 부대 상관이 보초를 서고 있던 신고자(이씨) 등 4명에게 매장하라고 지시. 시체를 리어카로 운반, 교도소 구내 관사 앞 소나무숲에 묻었고 교도소 창고 앞마당 가마니에 방치되었던 피 흘리는 시체 1구를 같은 장소에 추가 매장했다"고 기록됐다.

 511분석반은 신고 내용 등을 이씨의 부대원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사실로 판단했다.

 이들은 '교도소 연행자 중 사망자를 계엄군이 구내에 가매장했다가 철수 이후 교도소 측에서 발굴 처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공수부대가 숨진 시민들을 병원 등으로 옮기지 않고 몰래 묻었다는 사실을 군 스스로 인정한 공식 문건이다.

 3공수는 1980년 5월21일 오후부터 24일까지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다. 이씨가 증언한 '관사 앞'은 계엄군이 철수한 직후인 1980년 5월30일 땅에 묻혀 있던 8구의 시신이 수습됐던 곳이다. 최근 당시 교도관은 이 곳을 제외한 교도소 내 다른 2곳에도 시신이 암매장됐다고 증언했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에 다시 내려가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했다는 제11공수부대 간부들의 증언도 확인됐다.

 뉴시스가 입수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년)의 '면담보고서'에는 김효겸 제11공수 62대대 4지역대 1중대 하사의 증언이 기록돼 있다.

 김 하사는 '광주에서 철수 후 국민대에 주둔할 때 62대대장 인솔하에 일부 병사들이 보병 복장을 하고 광주로 가서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제11공수 간부들이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에서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사진은 5·18 당시 11공수 62대대장이었던 이제원 중령의 1995년 6월26일 서울지검 진술 조서 편집본. 2017.09.17. guggy@newsis.com
김 하사의 증언 속에서 거론된, 5·18 당시 11공수 62대대장이었던 이제원 중령도 지난 1995년 6월26일 검찰 조사에서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이 중령은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내란 목적 살인죄와 관련,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광주에서 올라와 저의 대대는 국민대에 있고, 다른 대대와 여단은 경희대에 있었는데 여단에서 광주에서 사체를 가매장한 병력들을 전부 차출해 보내라고 해 보낸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11공수 간부의 증언은 또 있다.

 5·18 당시 김 하사의 직속 상관이었던 최규진 11공수 62대대 4지역대장은 같은 해 5월31일 검찰에서 '정원각(중사)이 광주에 내려간 시기는 어떠하며 사체를 발굴하고 왔다고 하던가요'라는 질문에 '저희가 국민대에 올라간 것이 5월29일 경인데 그로부터 1주일이 채 못 된 시기였으니 6월초로 기억이 된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당시 여단에서 병력들을 전체적으로 인솔하고 광주로 내려갔는데 저의 기억으로는 정원각이 발굴하고 왔다고 저에게 보고를 한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증언은 5·18 때 11공수가 주남마을 학살 당시 암매장한 2명 외에 적어도 가매장한 광주 시민이 더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11공수가 다시 내려와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그와 관련된 군 문건은 여태 공개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군 특성상 임무에 대한 보고서가 반드시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책임자들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공수가 주둔했던 옛 광주교도소 안팎에서는 실제 암매장된 시신이 발굴됐고 이와 관련된 여러 제보도 있었다"며 "그 동안 주변이 크게 바뀌지 않은 만큼 이번에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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