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책점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준 곳이다. 18세기 중반~20세기 초 성행했다. 세책점을 통해 유통되는 소설을 ‘세책 고소설’이라고 불렀는데, 한글소설이 많았다. 주독자층은 사대부 집안의 여성과 궁중의 여성이었다. 세책점의 유행소설을 읽지 않으면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영·정조 때 문신 채제공(1720~1799)이 당시의 열기를 전한다.
‘근세에 안방의 부녀자들이 경쟁하는 것 중에 능히 기록할 만한 것으로 오직 패설이 있는데 이는 좋아함이 나날이 늘고 달마다 증가하여 그 수가 천백 종에 이르렀다. 쾌가는 이것을 깨끗이 베껴 쓰고 무릇 빌려 주는 일을 했는데, 번번이 그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 부녀자들은 식견이 없어 혹 비녀나 팔지를 팔거나 혹 빚을 내면서까지 서로 싸우듯이 빌려 가지고 가 그것으로 긴 해를 보냈다.’ (‘여사서’ 서문)
세책본, 즉 세책점의 책은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려고 제작됐으므로 형태가 독특했다. 삼베 같은 것으로 싸서 표지를 두껍게 만들었고, 책장이 해지는 것을 막고자 책장마다 들기름을 칠했다. 책 상단에 쪽수를 표기했고, 책을 넘기는 부분이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1~3자를 덜 썼다. 낙서, 음화, 그림 등이 남아있기도 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낙성비룡’ 권1 등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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