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굶고 맞고 묶이다 숨지는 아이들…'훈육'은 없다

기사등록 2017/05/05 04:50:00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는 2만9669건으로 전년(1만9214건) 대비 54.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hokma@newsis.com
매년 증가하는 아동학대…친부모 범행이 81%
 '체벌=훈육' 인식 바꿔야…손찌검 대신 대화로
 아동학대·치사 처벌 낮아…英·美·獨 살인죄 적용
 존속살해와 같이 비속살해에도 가중처벌 필요

【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주부 A씨는 38개월 된 아들이 부엌에서 쿠키를 만들겠다며 밀가루와 계란을 그릇에 들이 붓는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들에게 직접 만들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순간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A씨는 마냥 참다가는 화병이 걸릴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들의 등짝을 발로 두세 번 밀치고 소리까지 질렀다. 기겁한 아들이 울다 지쳐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니 A씨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A씨는 올바른 훈육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4일 한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아기 엄마의 하소연이다. 온라인에는 '한 차례도 안 때리고 키우는 게 가능할까요' 등 자식의 올바른 훈육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고성을 지르거나 가벼운 체벌을 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문제는 가볍게 시작한 체벌이 점차 도가 지나쳐 감정이 앞선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점이다. 자식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겨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이는 훈육이 아닌 학대가 된다. 실제로 아동학대는 대부분 '아동이 살고 있는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체벌은 훈육의 일종' 아동학대 매년 증가…친부모 학대 81%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고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4년 1만7791건, 2015년 1만9214건, 2016년 2만9669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 추세다. 신고된 사건 중 아동학대로 판명 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2014년에는 신고건수의 약 59%인 1만27건, 2015년에는 1만1000건(58%), 2016년 1만8000건(62%)이었다. 10건의 신고 사건 중 6건이 실제 아동학대인 셈이다.  

【평택=뉴시스】정재석 기자 = 친부와 계모의 모진 학대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한 신원영(7)군의 첫 공판이 25일 예정된 가운데, 24일 경기 평택역 앞에서는 피의자들의 가중처벌을 촉구하는 엄마들의 촛불모임이 열린다.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진행될 모임에는 인터넷 카페 '평택 안포맘'과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회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원영이를 위해 촛불을 밝힐 예정이다.2016.04.24.(사진 =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제공)  photo@newsis.com
 특히 아동학대의 약 81%가 친부모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4개월 동안 아들을 화장실에 감금하고 학대해 사망한 평택 원영이 사건,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훼손 사건 등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다. 전체 아동학대 중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인 영유아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 2014년 기준 15.2%에 달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무속신앙에 빠져 생후 6개월 된 젖먹이 아들을 죽인 친모 원모(38)씨가 7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원씨는 2010년 2월 무속인으로부터 아기에게 액운이 들었다는 말에 아들의 몸을 향불로 지지는 의식을 치르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체를 불에 태운 뒤 야산에 유기했다. 경찰은 원씨를 상해치사, 사체 유기·손괴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지난달 서울에서도 친모가 사이비종교에 빠져 세 살배기 아들의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밝혀졌다. 최모(41)씨는 2014년 진돗개를 신성시하는 종교집단에 빠져 이혼 후 아들, 딸을 데리고 신자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다. 신자 중 행동대장 격인 김모(53·여)씨는 "악귀가 씌어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들을 상습적으로 때리다 끝내 사망케 했다. 최씨는 아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면 범죄가 발각될 우려가 있어 사체를 불에 태워 유기했다. 김씨는 폭행치사로, 친모 최씨는 사체 유기·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영유아 학대의 경우 대부분 가정 내에서 발생해 주변에서 알기가 쉽지 않고, 살인 등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 입건이 된다해도 피해 아동의 의사 전달 능력이 부족하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힘들어 학대 유무를 입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체벌은 훈육의 일종'이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부모들이 자기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식을 때리는 경우가 많다. 매질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는 것 자체가 학대"라며 "부모는 아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면 안 된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아이의 잘못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로 차고 온몸 묶어도' 처벌 수위 턱없이 낮아…비속살해 가중처벌 없어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높다. 살해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원씨처럼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상해치사 등이 적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여수=뉴시스】김석훈 기자 = 27일 오후 전남 여수시 신덕해수욕장 인근 야산에서 자신의 두살배기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모(26)씨에 대한 광양경찰서의 현장 검증이 진행된 가운데 여수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소속 회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7.02.27.   kim@newsis.com   
 실제로 지난 2015년 대구에서 빵을 먹다 흘렸다는 이유로 5살 딸을 발로 차 숨지게 한 친부 신모(34)씨의 경우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적용,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신씨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점, 숨진 딸의 어머니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양형 이유였다.

 같은 해 1월 대전에서 잠버릇이 나쁘다는 이유로 생후 17개월 된 딸에게 압박붕대로 온 몸을 감아 9시간 동안 방치해 숨지게 한 친모 노모(30)씨가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원은 "노씨에게 학대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딸의 사망을 예견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법원은 노씨의 아동학대죄를 인정했으나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 규정이 모호하다며 살인죄를 적용해 가중처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014년 아동학대치사죄가 신설된 이후 최소 징역 5년 또는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으나 살인죄에 비해 형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은 징역 6~9년형이다.

 반면 영국·독일·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흉기가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도 살인죄를 적용하며 예외 없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소속 신수경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설마 부모가 애를 죽이려고 하겠어'라는 정서가 팽배해 범죄에 대한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판사들도 관행에서 벗어나 판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양형위원회에서 권고하는 양형 기준에 맞춰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선진국의 경우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고 그에 따른 처벌도 세분화 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구체적인 피해 아동의 연령, 범죄 경위 등을 세세하게 반영해 국민정서에 맞는 양형 판단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속살해와 달리 비속살해는 가중처벌이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존속살해는 폐륜에 대한 엄중 책임을 물어 가중 처벌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반면 부모가 자식을 죽인 비속살해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중 처벌 규정이 없다.

 신 변호사는 "전통적으로 가족 질서 내에서 효(孝)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문화로 존속살해를 일반적인 살해보다 높게 처벌하고 있다"면서 "형평성 차원도 고려해 상대적으로 부모보다 힘이 약하고 저항능력이 부족한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범죄에 대해서도 가중처벌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lj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