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매료된 이유다.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물인 '로&오더'의 배우 존 카리아니가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작품으로 메인 주 북쪽 오지에 있는 상상 속의 조그만 마을 '올모스트'가 배경이다.
한겨울 금요일 밤 9시 아홉 커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사랑이야기로 10분 안팎의 에피소드마다 마지막에는 오로라가 등장한다. 사랑을 예고하는 빛이기도 하고, 죄책감을 덜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
'올모스트 메인'을 통해 2년 만에 연극에 복귀하는 류현경은 "'올모스트 메인'의 에피소드들에서 오로라가 피어나는 순간은 일상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판타지"라며 "연극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장치라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한 배우이자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박정표를 통해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제작사에 어필을 하기도 했다"며 눈을 빛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한 류현경이 무대에 서고 싶었던 이유는 "동시대 관객과 바로 앞에서 호흡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극에 출연하니 그런 것이 느껴져 신기했다"며 만족해했다.
9가지 에피소드를 엮은 옴니버스 연극인 '올머스트 메인'에서는 3가지 역을 맡는다. 에피소드 1인 '허 하트'의 심장을 가지고 다니는 '글로리', 에피소드 2인 '새드 & 글래드'에서 발랄하고 유쾌한 웨이트리스, 에피소드 6인 '웨이 잇 웬트'에서 권태기에 접어든 남편에게 무정함을 느끼는 '마시'를 연기한다.
글로리는 류현경이 '올모스트 메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찰리 카우프먼의 영화처럼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마법을 부리는 걸 좋아하는데 '허 하트'가 그렇다. 글로리는 자신의 남편이 죽고 난 뒤 심장이 깨져, 그것을 조각째 들고 다닌다.
글로리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책임이 아닌 남편의 죽음을 자책하는 인물이다. "진짜 순수한 사람이다. 그러니 온전히 그를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에 오로라를 찾아 떠난다."
웨이트리스는 글로리와 성격이 상반된다. 퍼브의 웨이트리스로 몸과 생각, 마음에 발랄함과 상큼함을 머금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됐어도 영어 특유의 과장된 억양을 써야 한다. "한국적인 뉘앙스와 표현으로 하면 분위기가 살지 않더라. 내게는 가장 어려운 캐릭터"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마시는 반면 안타까움을 사는 인물이다. 꽁꽁 언 연못에 스케이트를 타러 온 부부는 계속해서 어긋나기만 한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거지. 물론 가까운 사이더라도 그 사람의 감정을 세밀하게 알기는 힘들다.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안타까운 순간이 된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다."
분위기 좋기로 유명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와의 작업은 당연히 마음에 든다. 민준호 간다 대표의 조연출 출신인 김은영 연출의 데뷔작으로 역시 선배의 기운을 빼 닮았다. "배우들끼리는 물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호흡이 좋다.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 이렇게 인원이 많다 보면 다툴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모난 사람이 한명도 없더라."
'올모스트 메인'을 통해서는 "내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전에는 몰랐다. 낯도 안 가리고 털털한데 연습을 하면서 부끄러워 하고 있더라. 특히 웨이트리스."
류현경은 그간의 출연작에서도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한 면모를 찾아왔다. 영화 '제보자'에서 남편의 내부 고발을 놓고 진실과 아픈 딸 사이에서 고민하는 '김미현', 드라마 '더 러버'에서 평범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터넷 신문 수습기자 '류두리' 등이 그랬다.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에서 이번 시즌 1차팀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올모스트 메인'은 12일부터 류현경을 비롯한 새 배우들로 2차 공연을 이어간다. 8월28일까지 김호진 이기섭 김지민 김남호 이지숙 권동호 임희철 신창주 오인하 한송희 김선호 박영훈 유주혜 이은지 박란주 정수지 서은아가 책임진다. 프로듀서 조한성 안혁원, 번역 이상우, 각색 민준호. 러닝타임 110분(인터미션 없음), 만 13세 이상 관람가. 3만~4만원.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창작하는 공간·스토피리. 02-744-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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