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불황에 저렴한 미국 경질유 수입…"간단한 경제논리"
【서울=뉴시스】강덕우 기자 = 세계 최대 원유매장국인 베네수엘라가 미국으로부터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3일(현지시간) CNN머니는 이날 석유시장조사업체 클리퍼머니의 조사를 인용해 미국산 원유 50만배럴을 싣고 미국항구를 떠난 유조선이 베네수엘라 정부가 소유한 항구에 정박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가 수입한 원유는 이어 카리브해 네덜란드령 앤틸러스제도의 퀴라소 소재 정제시설로 보내졌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 말 원유수출금지를 해제한 뒤 전 세계 곳곳에 미국산 원유가 수출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가 미국산 원유를 수입한다는 소식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시장을 호령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러시아보다 더 많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는 약 2980억배럴 상당의 원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는 오래전부터 미국과 정치적 마찰을 빚어 왔다. 지난해 3월 오바마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측근을 대상으로 미국입국제재 조치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마두로 대통령의 가족 2명을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구(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미국행 수출액은 2008년 480억달러에서 2014년 2600만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가 미국으로부터 원유를 사들인 이유는, 국제유가가 폭락해 재정이 파탄난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원유를 뽑아내 정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원유를 수입하는 것보다 더 비싼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악의 경제불황으로 경제붕괴 직전까지 몰린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추가정제비용을 감수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올해 성장률이 18% 축소되고 720%에 달하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전망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경제붕괴의 문턱까지 가 있다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클리퍼머니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정제하기 힘든 중질유로 국제유가 폭락으로 바로 사용가능한 경질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자 자국 중질유를 수입산 경질유와 섞은 뒤에야 상품가치가 있는 석유가 생산된다.
경질유나 중질유와 같은 원유의 품질은 탄소비중(API)과 황 함유량에 따라 구분된다. API 34도 이상을 경질유, 30∼34도를 중(中)질유, 30도 미만을 중(重)질유라고 표시한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는 API가 39도로 3대 원유(WTIㆍ브렌트유ㆍ두바이유) 중 가장 높은 경질유인 반면 황 함유량은 0.3%로 가장 낮다. API는 높고 황 함유량은 낮을수록 가정난방용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고품질유다. 반면 두바이유는 API가 28도로 가장 낮고 황 함유량은 2.9%로 가장 높아 산업용에 적합한 고유황 중질유로 분류된다.
클리퍼머니의 닐로파르 사이디 연구원은 "서아프리카나 북아프리카에서 경질유를 수입해오는 것 보다 이웃국가인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오는 게 저렴한 간단한 경제논리"라며 베네수엘라 외에도 저유가로 시름 하고있는 앙골라와 나이지리아도 이미 미국에서 경질유를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마두로 대통령은 유가하락에 제동을 걸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에 감산을 요청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월26일 "에울로지오 델 피노 석유장관에게 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순방하라고 지시했다"며 "유가하락을 막기 위한 공조를 호소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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