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실경산수 맥이은 '현대 수묵풍경화'
3년마다 전시…8일부터 청작화랑서 개인전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요즘도 그런 그림을 해?"
청와대에도 그림이 걸려있고 소위 '잘나가는 화가'지만 그에게 늘 따라붙는 소리다.
세상도, 그림도 빠르게 변해왔지만 그는 우직했다. 옆길로 새거나 한눈 팔지 않고 '수묵 풍경'에 천착하고 있다. 벌써 40여 년째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난 뿌리가 명확합니다."
겸재 실경산수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화 오용길(69·이화여대 명예교수)화백이다.
"왜 변하지 않았냐고요?. 구닥다리로 태어났어요. 제가 재미없는 타입이에요 ~.하하하"
오용길 화백은 국내 최고의 수묵담채화가로 꼽힌다. 이미 27세에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어 월전미술상·의재 허백련 예술상·이당미술상·동아미술상 등 주요 상이란 상은 휩쓸다시피 했다.
어쩌면 촌스럽게,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수묵 풍경'을 하는 배경엔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라는 자신감과 그의 고집이 있었다.
서울대학시절부터 그는 '이상한 학생'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산정 서세옥과 남정 박노수 등 유명 교수가 있었다.
산정은 "실험을 하게" 했고, 남정은 "선이 위주네"라며 그를 지적했다.
하지만 교수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고 싶은대로 했다. "나는 내가 주인이죠. 흉내내는 건 관심 없었어요"
이미 서울예고에서 기본기를 모두 배웠고 동기들보다는 실력이 뛰어났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변화의 세상에 새로운 실험보다는 먹과 붓맛의 깊이를 더 파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대학은 배우기보다 내가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대 출신치고는 특이하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동양 회화 본연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전통의 맥을 잇고 있지만 실험성을 멈추진 않았다. '수묵 채색화'에 몰두 했다. "먹만 다루는 수묵화가들이 색채를 다루기 어렵거든요."
작품이 화사하고 생명력을 띄는 건 동양과 서양이 혼합됐기 때문이다. 화선지에 동양화 물감만 쓰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했다. 자연 재료인 안료가 날아가 분홍색이 흰색이 되버렸다. 여러 기법을 거쳐 수채화 물감을 쓰니 문제가 해결됐고, 먹물과 어우러져 더욱 싱싱한 화면을 자랑한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묘미를 조형적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물론 '긋고 찍은' 운필이 가장 핵심이다.
80년대 미술시장에서 그는 이왈종, 이숙자, 황창배, 박대성 등과 함께 스타작가로 꼽혔다. 90년 서양화의 인기속에에 인기 작가들도 '서양화같은 한국화'로 변했지만 그는 먹을 놓지 않았다. 한국화 전문 화랑도 동양화를 외면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의 그림은 더욱 주가를 발휘했다. '전통 수묵화'의 희귀성과 현대 '수묵 풍경화'로 진화한 그림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전시에 초대됐고 작품은 늘 팔려나갔다.
2009년 동산방화랑에서 전시는 그에게 최대 굴욕이었다. 당시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국내 경기불황의 여파가 몰아닥친 때였다. 작품은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동양화를 외면하던 90년대에도 이러지 않았는데…."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3년에 한 번씩 여는 전시는 '재탕'을 안한다. "거짓말을 못합니다. 봐야 그리죠."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실경 혹은 진경 산수’로 담아낸 것이다. 그림은 늘 사생을 다니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수묵풍경이지만 그의 그림이 현대에도 인기 있는 것은 일상의 우리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겸재처럼 특별한 비경이나 웅장한 절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풍경, 우리가 늘 보는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 구식같지만 작품을 직접 보면 그 생각이 변한다. '담백한 절제미'가 압권이다.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그 안에 흐른다. 꾸밈없고 솔직하며 흐르는 듯 유려한 형상의 묘사는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흐드러진 풍경이지만 명확한 필선으로 이뤄진 화면은 웅성웅성 소란스럽게 생동감을 자아낸다. 노랗게 불이난 듯 뭉뜨그려 보이는 '봄의 기운'은 가까이 보면 나무 이파리들, 풀 하나에도 생명의 존재감을 확인할수 있다.
팝아트가 대세인 경박한 시대지만 그는 "무엇보다 그림은 품격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무리없이 대학도 가고, 교수도 됐고,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의리도 있는 화가다. 1990년 청작화랑에서 5회 개인전을 연 이후 작은 화랑이지만 인연을 잇고 있다. 오는 8일부터 제21회 개인전을 청작화랑에서 연다. '가을 서정'을 담은 수묵풍경 25점이 나온다. 작품값은 호당 50만원선이다. 02-549-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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