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결혼도 스펙?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여자들 심리"…'굽이치는 달'

기사등록 2015/06/04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5:06:08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화의 의미도, 아이가 생겼다는 말도, 아내 있는 남자와 도망간다는 것도 지금의 기요미에게는 어디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다."(22쪽)

 "준코에게 연락해보자고 마음 먹은 것은 연하장에 적힌 한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해. 도쿄에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해.' 혼인신고도 못 해서 결혼 전 성씨를 그대로 연하장에 써 보내야 하는 생활의 어디를 어떻게 뒤져보면 '행복'이라는 잠꼬대 같은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지, 모모코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육지에 올라가서 준코의 연하장을 손에 들었을 때, 모모코에게도 '행복'이라는 단어는 잠꼬대 같은 소리일 뿐이었다."(58쪽)

 '호텔 로열'로 2013년 제14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 여류 작가 사쿠라기 시노가 '굽이치는 달'를 냈다. 작가는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동성 친구에 대한 여자들의 진짜 속마음을 그렸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옛 속담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여자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일생이 좌우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교 사상에 따라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여필종부(女必從夫)', 시집간 딸은 가족이 아니라 남이나 마찬가지라며 남녀를 차별하던 '출가외인(出嫁外人)' 등이 여자의 운명이었던 시절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여자가 더 이상 남자의 경제력에 의지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다. 여성들이 취직 대신 결혼(시집)을 택한다는 뜻의 '취집'이라는 신조어에 맞서 '김치녀'라는 속어까지 등장했다. 경제적 부담을 남자에게만 지우는 여성을 비하한 단어로,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은 없이 남자의 조건만 따지는 여자는 비난의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만만치 않다. 까다롭게 조건을 따지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 노력하고 사실 그 배우자 선택에 따라 인생의 간극도 커져만 간다.

 이 소설은 결혼마저 '스펙'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세태를 풍자하듯 소위 말해 '조건이 좋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20살이나 연상인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진 여인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사람은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의 행복이나 불행에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면서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참견하거나 쓴소리라도 보태려 한다. 혹은 무언가 하나라도 자신이 더 낫다고 느껴지는 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우월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직시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감정,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를 절묘하게 그려냈다. 이야기는 홋카이도의 도립 습원 고등학교를 졸업한 겨울, 스가 준코가 화과자점 직인(職人)과 도쿄로 야반도주하면서 시작된다.

 준코는 아내가 있는 20살 연상의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몇십 년 동안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한 채 온갖 고생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남들 눈에는 불행하게 보이지만 준코는 그 안에서 행복해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기요미(1984년), 모모코(1990년), 야요이(1993년) 미나에(2000년), 시즈에(2005년), 나오코(2009년) 6명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꿈꾸어온 행복이 뿌리채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특이할 점은 준코는 작품의 중심에 있지만, 이들 6명이 화자가 되어 연대순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이로써 20대 초반에서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여자들 이야기를 통해 준코의 25년을 조명한다.

 준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주변 인물들이 자기 삶에서 준코를 잠시 만난 때나 준코에 대해 건너 들은 말을 전하는 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의 퍼즐을 맞추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아내 있는 남자여도, 파멸이고 파괴여도, 준코에게 그 남자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짝이며 옆구리에 오싹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혹시 이사무의 아이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낳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임신은 단순한 '실수'일 뿐이다. 내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없는 것보다 나은 남자'에게 온몸을 던져 의지할 수는 없다. 쓰레기통 속의 둘둘 말린 열성의 잔해가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아서 기요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40~41쪽)

 "문득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자기 인생을 상상했다. 준코의 모습에 자신의 내일을 겹쳐 보고 있었다. 아, 우리도 벌써 그런 나이인가. 나름대로 납득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래도 어디에 풀어야 좋을지 모르는 분노가 가슴 속에 먹먹하게 차올랐다."(228쪽)

 작가는 일본의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가치관도 행복감도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을 때 안심한다"며 "행운이나 이득을 부러워하고 자신에게 없는 부분만을 보며 애태운다. 그런 느낌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옮긴이 양윤옥은 "준코가 살아가는 방식은 주변 사람들의 의식 한 귀퉁이에 달라붙어 인생의 고비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며 "어느 특정한 동창의 소식이 묘한 때에 새삼 궁금해지고 왠지 내 삶과 견줘보게 되는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순수한 어떤 것에 집중력이 뛰어나고 그 올곧음으로 인해 평범하다고 할 만한 삶에서 크게 일탈해버린 친구-행복이라는 것에 발이 묶여 차마 가지 못한 불행의 길을 마치 희생양처럼 대신해주기 때문일까"라고 덧붙였다. 244쪽, 1만2000원,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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