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명량'은 개봉일인 7월30일 68만2757명을 불러 모아 역대 개봉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을 갈아치웠다. 8월3일에는 일일 최다 관객 기록인 125만3619명을 달성했다. 8월4일에는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98만9832명이 봐 평일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이제 '명량'은 역대 최다 관객을 넘어 1500만 관객을 넘본다.
'명량'은 1000만명 이상이 본 10번째 한국영화다. 외화까지 포함하면 12번째다. '겨울왕국'에 이어 올들어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됐다. 지난해 '변호인', 2012년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영화는 속속 나오고 있다. '1000만 영화'라는 상징성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명량'이 1000만 관객을 달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상식 밖이다. 이 영화를 '또 한 편의 1000만 영화'로 단순분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쯤 되면 '명량'은 하나의 메시지다. 물론 이 영화가 1000만을 넘어 1500만 관객을 노릴 수 있게 된 데에는 관객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관객의 발걸음이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외부 조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는 큰 패배감에 휩싸여있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로 294명이 사망했다. 10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모습은 절망스러웠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부실 국가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검·경은 세월호 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체포하지 못했다. 그가 시체로 발견됐을 때 쏟아진 음모론은 국민이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느끼는 좌절감의 반영이다.
이 비극적 사건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이 터졌다. 군은 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 의문에 휩싸인 '포천 살인'사건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방식으로 행해진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은 또 어떠한가. 사회가 집단 패닉 상태로 가고 있다는 진단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명량'은 승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에 맞서 승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드라마는 허구가 아닌 엄연한 역사다. 역사는 현재와 만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의미는 비전이 된다. 이 영화는 역사에 살을 더해 현실을 더 극적으로 파고든다. '명량'의 폭발력은 여기서 발생한다.
'이순신'(최민식)은 아들 '이회'(권율)에게 말한다. "독버섯처럼 번진 두려움이 문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다." 일련의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 대중은 어쩌면 조선 수군처럼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영화는 잠시나마 관객에게 용기를 준다. 최악의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간단하고, 명료한 메시지다. '명량'은 용기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4월23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직후다. 실제로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었다. 사고를 수습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국민은 정부의 리더십에 실망했다. 리더십 자체가 없다는 말도 나왔다.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그들의 리더십이 국민이 아닌 권력을 향해 있음을 느끼게 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윤 일병 사건을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백성을 향해있다. 선조는 백성을 버렸다. 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도망갔다. 또 이순신을 끊임없이 죽이려 들었다. 정치논리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리더십 실종 상태였다.
영화에서 이회는 아버지 이순신에게 도망가자고 말한다.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까지 싸우려하는 이유는 임금에 대한 충 때문이냐고 묻는다. 이순신은 답한다.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명량'은 흔히들 말하는 민족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이며, 그 관련 없음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영화는 이순신이 왜 목숨을 걸고 명량에 나갔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며 "그 답은 백성을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나라가 아닌 오직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이순신의 모습에 리더십 부재 속에 있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때마침 휘몰아치는 명량의 회오리를 천운이라고 하는 부하에게 "백성이 천운"이라고 말한다. 관객이 '명량'의 이순신에 열광하는 부분은 그가 제갈량과 같은 전략을 통해 승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순신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자세로 선봉에 서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바로 그 리더십에 전율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설문조사를 하면 항상 정상에 오르는 인물이다.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했다. 단 한 번도 전투에서 진 적이 없다. 그가 보여준 승리는 신화와도 같다. 이순신의 역사를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이순신은 '호감 그 자체' 위인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순신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과거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이순신을 다뤘지만, 대중의 기억에 또렷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없다. 2004~2005 KBS 1TV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이순신이 그나마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순신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는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그를 구현해내는 영상은 많지 않았다"고 짚으며 "'명량'은 이런 면에서 소재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리한 기획"이었다고 지적했다.
'명량'이 1000만 관객을 넘어 1500만 관객까지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순신이라는 소재에 거부감을 느낄 관객은 없다. 가장 움직이기 힘든 관객층으로 분류되는 50대 이상 남성층까지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게 이순신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힘이다.
'명량'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드라마의 완성도는 낮지만, 해상 액션 장면은 훌륭하다 정도다. '명량'은 실제로 전반부에서 감정을 쌓지 못하고, 이순신의 고뇌를 나열하는 방식을 택해 지루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명량'의 드라마는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핍박받는 인물이 모든 고통을 참아내고 결국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이순신은 왕에게도 버림받고, 부하에게도 배신당하며, 곧 있을 전투에서 죽을지 모르지만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한다.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역시 해상 액션이다. 김한민 감독은 해상 전투에 무려 61분의 러닝타임을 쓰면서도 명량대첩이라는 전설의 전투를 지루하지 않게 영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명량'의 해전은 위기의 크기를 점차 키우면서 극복의 처절함을 극대화한다. 네 번의 위기와 네 번의 극복으로 이뤄진 이 전투신은 적선의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게으른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위기를 만들고, 때마다 다른 해결책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통해 한 시간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향해 몰려오는 다수의 왜선, 이 첫 번째 위기를 이순신은 현란한 화포 공격을 통해 극복한다. 왜선에 둘러싸여 백병전을 벌이는 두 번째 위기는 자살에 가까운 화포 공격으로 이겨내고, 폭발물을 가득 실은 왜선의 공격에서는 극중 한 인물과 민초의 기지를 통해 벗어난다. 왜선이 모두 들이닥치는 마지막 위기에서는 이순신과 그의 장수, 수군, 민초가 모두 모여 왜군을 물리친다.
또 이 긴 전투를 액션의 다이내믹함을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클로즈업을 활용하지 않고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시각화했다는 점도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명량'이 개봉한 7월30일은 여름휴가 절정기다. 여름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패는 휴가지로 떠나는 피서 인파를 얼마나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명량'이 개봉하는 시기에 맞춰 태풍 '나크리'가 상륙했다. 휴가지는 한산했다. 휴가지로 갈 수 없게 된 관객이 영화관으로 몰렸다. 일반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가장 적은 월요일에 '명량'이 일일 최다 관객수 기록을 세운 건 이 때문이다.
대진운도 좋았다. '명량'은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과 함께 여름 대작 영화 세 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가장 기대를 모은 영화는 하정우·강동원 주연 '군도: 민란의 시대'였다. 하지만 '군도'에 대한 관객 반응이 기대이하로 나타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1주 후 개봉한 '명량'으로 쏠렸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도 올해에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 상영 중인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감독 제임스 건) 정도가 '명량'의 경쟁작이지만, 상영 스크린이 절대 부족하다. 보고 싶어도 볼 데가 없다시피 하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명량'의 흥행성공 요인 중 하나는 '국뽕'(애국심+마약)이다. 국뽕은 인터넷 신조어로 쇼비니즘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 사람이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마치 2007년 '디워' 논란 때 일었던 '애국심 마케팅'을 보는 듯하다. 진중권의 '졸작' 발언과 함께 '명량'에 대한 찬사를 국뽕이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생겨나고 있다.
'명량'은 애국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이순신이 전투에 나서는 이유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순신이 명량에서 격파한 대상이 일본이라는 점, 그리고 이순신이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표상화 돼있다는 점은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다.
문화평론가 이문원은 "'명량'의 흥행에 과도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명량'은 시기적으로 운이 좋은 측면도 있고, 대진운도 좋았다"고 봤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씩 나오는 등 영화 관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명량'의 흥행 요인 중 하나"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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