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루 한복녀가 당구치네, 화가 김현정 ‘내숭올림픽’

기사등록 2014/06/19 18:11:51 최종수정 2016/12/28 12:56:15
【서울=뉴시스】화가 김현정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도발적인 자세로 당구대에 앉아 큐의 끝을 향해 야릇한 눈길로 공을 바라보거나 암벽을 오르는 작품이 흥미롭다. 또 한복에 선캡을 쓰고 동네 공원에 마련된 나무로 만들어진 윗몸일으키기 기구에 누워 운동하는 모습도 이채롭다. 주위에는 명품 가방과 한때 ‘된장녀’의 상징으로 집중포화를 맞은 브랜드의 컵이 놓여있다.

 동양화가 김현정(26)의 작품은 이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근하다. 그녀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발칙하면서도 발랄한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동양화는 물론 3D 프린팅으로 완성된 작품도 세워놨다. 한복을 입고 보드를 타거나 강아지를 끄는 모습 등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 작품에는 속이 비치는 한복을 입혀놨다. “넓은 치마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느냐”며 웃는다.

 전시 제목은 ‘내숭 올림픽’이다. 작품들은 당구, 골프, 보드 등 일상에서 하는 운동들을 소재로 했다. 자신의 작업실인 서울 양재동 인근 시민공원을 거닐며 생각한 것들이다. 일상생활 속 운동을 통해 표출되는 감정과 고민의 조각들을 화폭과 3D프린트 입체작으로 만들어 냈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친근하고 게임 같은 운동들을 통해 열정과 집념, 환희, 감동, 분노, 좌절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며 “이것은 마치 프리즘이 백색광에 혼재하는 각각의 색소들을 분산시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김현정 '폼생폼사 순정녀'(112×134㎝,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2014)
 처음 ‘내숭 이야기’를 구성할 때는 내숭을 떠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 욕구로 시작했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숭’이 심리학적, 철학적 분석대상이 됐다. “현재 ‘내숭 이야기’의 ‘내숭’은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태도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누드로 몸의 라인을 표현하고 얇은 한지로 한복을 덧입힌다.

 작품에는 한국전통의상인 한복과 함께 시대성을 상징하는 게임기, 휴대전화, 유명 헤드폰 등이 등장한다. 특히 한복을 입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자전거를 타거나 책상에 발을 올린 채로 태블릿을 조작하는 모습 등 예법이나 통념적인 기대에 걸맞은 이미지는 아니다.

 “인물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내숭과 관련해 은폐성이나 복잡성을 상징하며 작품의 심미성을 더한다는 기능적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복을 입고 있는 인물의 동세와 작품 속에 시대성을 담는 소품들과의 대비가 주는 의외성”이라고 강조했다. “화면에 전통의상과 현대의 일상을 공존시키고 겉과 속이 다른 여인의 내숭이라는 일종의 비상식이나 아이러니를 형상화해 파격을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김현정 '내숭: 우연을 가장한 만남'(각 129×153㎝,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2014)
 작품 속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대부분 자신의 일상적 행동이나 습관을 반영했다. “그림을 통해 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미술적 작업인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내숭’은 대학졸업 작품 전시에 내놨다가 1차 심사에서 퇴짜를 맞은 시리즈다. 이후 ‘화병’ 시리즈를 하다가 다시 ‘내숭’ 시리즈를 하게 됐다.

 김현정은 서울대에서 동양화와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서울대대학원 동양화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회화 20여 점과 3D 프린팅 작품 등 39점이 있다. 30일까지 볼 수 있다. 02-736-1020  

 swryu@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