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22일까지 계속되는 ‘먼 그림자-지평선’이다. 지난 수십년 몽골 초원을 여행하며 받은 다양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캔버스에 풀어낸 신작 60여점을 걸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채로 태고의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몽골의 드넓은 초원과 하늘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경계인 지평선, 그 위의 길에 주목하며 화폭에 담았다. 대지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캔버스 위로는 비와 바람, 햇볕과 같은 자연의 숨소리 하나에 길이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진다.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나가는 변화하는 길이 자리하며 쉼 없이 흐르는 거대한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지평선 역시 경계로서 명명되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경계 아닌 경계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란 결코 규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닌 ‘불변(不變)’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통해 눈앞의 현상뿐 아니라 그 안에는 오랜 흔적이 중첩되고 새로운 흔적을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먼 그림자’라는 전작을 통해 인도여행에 바탕을 둔 ‘먼 그림자-물길’에서 ‘물길’이 단어 그대로의 물길인 동시에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던 것과 같이 이번 전시에서 그가 언급한 ‘지평선’은 그 존재인 동시에 모호한 경계 위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섭리와 아우라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자의식에 연결지어 자신에게 되묻고자 한다.
“여기는 몽골 초원 그 가운데 어디쯤이다. 연한 백록의 허브와 보라색 라벤더가 지천으로 깔려 코와 눈을 멀게 한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스라한 지평선. 그 끝 즈음해서 너른 하늘이 명징하게 솟아오른다. 스멀스멀 일어나던 조각구름은 하늘 밭에서 뒹굴며 몸집을 키우다가, 어느새 스스로 몸무게로 무지막지한 폭우를 쏟아낸다.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혹은 섭리처럼 오고 가는, 거부할 수 없는 풍경들이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작가의 풍경은 무슨 자연생태보고서 같다. 사막과 초원 위로 하얗게 표백된 짐승의 뼈와 이름 모를 잡초들의 형해며 흔적이 아로새겨진다. 그 형해며 흔적 위로 이따금 도마뱀이 지나가는데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색깔을 바꾸는 꼴이 도마뱀의 능사라기보다는 도마뱀을 잉태한 땅의 생명력이며 포용력을 떠올려준다. 그런가 하면 무슨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구름이 때론 가벼운 것이 견고할 수 있다는 역설을 암시한다”고 봤다. 02-73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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