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정교한 겹겹장치, 빠져나올수없는 공포…영화 '더 웹툰: 예고살인'

기사등록 2013/06/18 14:55:20 최종수정 2016/12/28 07:37:44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한국 호러는 '더 웹툰: 예고살인' 전후로 나뉜다." 스릴러, 호러 마니아의 관점에서 내린 평가다.

 극 전반부는 이렇다. 어느 날 포털사이트 웹툰 담당팀장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수사에 나선 형사 '기철'(엄기준)과 '영수'(현우)는 그가 사망 전 인기 호러 웹툰 작가 '지윤'(이시영)으로부터 e-메일로 전송 받은 새 작품을 보던 중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망자는 바로 그 웹툰의 등장인물이 죽음을 맞은 모습 그대로 죽어있었다. 기철과 영수는 지윤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지윤은 결백을 주장한다. 그런데 웹툰 팀장 뿐 아니었다. 지윤의 웹툰 속 에피소드들처럼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간다. 마치 예고 살인처럼. 그제서야 지윤을 믿게 된 기철은 지윤과 함께 사건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감춰져 있던 충격적 진실이 드러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호러는 귀신이 여기저기서 펑펑, 뿅뿅 등장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매년 여름마다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식상함을 넘어 피로감마저 들기에 이르렀다. 한때 한국인을 공포의 벼랑 끝으로 몰아갔던 일제 호러들도 요즘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도 될 정도로 유치해졌다. 그러다 보니 오래 묵다 못해 곰삭은 '링'(1999)이나 '주온'(2002) 등이 새삼 그리워질 정도다.

 할리우드에서 직송된 호러들도 마찬가지다. 살인마에 의한 참혹한 연쇄살인만 계속 등장하다 보니 면역이 돼버려서인지 이곳저곳 흥건한 피와 나뒹구는 신체 조각들이 거북스럽기만 할뿐 전혀 두렵지 않다. 게다가 최근 등장한 일부 호러들은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생생하기는 하지만 결말 없이 현재진행형으로 끝나버려 보고난 뒤 찜찜함을 덜어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더 웹툰 예고살인'이라고 해서 귀신이 어느 순간, 어느 장소, 어느 모습으로 나타나 등장인물들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그런 패턴과 공식을 답습한다고 해도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니 최소한 귀신의 출현에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된다. 그래서 용서는 물론 만족까지 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 '와니와 준하'(2001), 멜로 사극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 등으로 더 유명하지만 호러 '분홍신'(2005) 연출 경력도 있는 김용균(44) 감독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과거 '분홍신'에서 가진 이야기의 밀도에 대한 아쉬움을 풀고 싶었다"는 김 감독은 "우리 영화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 스토리와 귀신 출현의 균형이었다. 맥락 없이 깜짝 놀라기만 한다면 보고 난 뒤 굉장히 기분이 안 좋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는 장면이 있어도 최대한 개연성을 부여해 그 이유가 설득되고, 공감되도록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 더욱 애정을 가게 만드는 것은 '웹툰'이다. 단, 그 성격은 다르다. 최근 스릴러 '이웃사람'(2012), 휴먼 액션 '26년'(2012), 액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등 히트한 웹툰을 영화화하는 시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 영화는 웹툰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순수 창작시나리오를 토대로 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대세인 웹툰을 102% 활용했다.

 먼저, 웹툰을 주된 소재로 이용해 21세기에 귀신이 등장해 원한을 품은 대상에게 복수를 한다는 시대 착오적 허구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또 웹툰을 영화적 장치로 썼다. 실사 커트와 웹툰 커트를 교묘하게 뒤섞어 관객들에게 영화 못잖게 익숙해진 웹툰을 보는 재미를 주는 한편 '웹툰이 살인을 예고한다'는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동시에 차마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덕분에 이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아닌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아내 흥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빼놓을 없는 만족감은 이시영(31) 엄기준(37) 현우(28) 등 배우들에게서 비롯된다. 엄기준이야 그간 SBS TV '유령'을 비롯해 MBC TV '라이프 특별조사팀'(2008), OCN '더 바이러스'(2013) 등 TV 드라마와 2010년 '파괴된 사나이'(감독 우민호) 등 스릴러 장르를 섭렵한 것이나, 정평이 난 연기력 덕에 영화를 보기 전부터 훌륭한 캐스팅으로 여겨진다. 

 반면, 이시영과 현우는 자칫 의구심이나 불안감을 갖기 쉬운 캐스팅이다. 이시영은 그 동안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주로 출연하면서 쌓은 '로코 퀸' 이미지, 현우는 여배우도 울고 갈듯한 꽃미남 외모가 스릴러물과 거리감을 만드는 탓이다. 원톱인 이시영보다 엄기준이 가장 먼저 캐스팅된 것이나 현우가 오디션을 자청해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기 전까지 김 감독이 캐스팅을 망설였던 것도 어찌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니, 김 감독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이시영은 그간 작품을 거듭하며 일취월장해온 연기력을 바탕으로 위험한 거래를 통해 웹툰 작가로 대성공을 거둔 지윤을 잘 표현해내며 '호러 퀸'으로 거듭났다. 김 감독은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시영에 대해 기존 이미지와 안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들을 많이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시영이 연기를 너무 잘 해줬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감독인 내가 지치고 힘들었던 몇 번의 고비에서 힘을 줬다는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현우는 꽃미남 이미지를 발판 삼아 오히려 극중 충격적 반전의 주인공으로 직행했다. 김 감독은 "캐스팅 당시 현우의 첫인상은 너무 고운 것이 약점이었다. 그런데 현우의 연기를 보고 캐스팅했다. 그리고 현우는 외모적인 반전이 극에 큰 효과를 줬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더 웹툰'은 27일 공포의 빗장을 연다. 이날은 마침 채닝 테이텀(33) 제이미 폭스(46)의 할리우드 액션 '화이트 하우스 다운'(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개봉일이기도 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뒤를 이어 할리우드의 대공세로부터 한국 영화를 구할 수 있을까. '맨 오브 스틸'(감독 잭 스나이더)이나 '월드 워 Z'(감독 마크 포스터) 등 할리우드 SF에 비해서는 승산이 있는 맞대결이 아닐까도 싶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 약해서가 아니라 '더 웹툰'의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판단에서 품게 되는 기대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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