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국내 극장에 걸리는 영국 영화 ‘도리안 그레이’(2009)와 독일 영화 ‘폴 다이어리’(2010)다. 제목에 대표적인 장점이 들어가 있다.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고라도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와 배경이 된 발트해의 절경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도리안 그레이’ 벤 반스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아일랜드 출신의 대표적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이 원작으로 올리버 파커(53)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와일드가 괴테의 ‘파우스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영원한 젊음을 얻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판다는 오랜 서구문학의 주제를 탐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으로 재해석했다면, 파커는 다소 관념적인 이 소설을 퇴폐적 에로티시즘으로 변모시켰다.
이 영화에서 오직 건질 것이 있다면 도리언 역 벤 반스(32)의 비현실적인 외모를 구경하는 맛이다. 수줍어하는 듯한 웃음과 검은 눈동자가 풍기는 신비로운 느낌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이 눈길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무기다. 원작에서는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족의 특징인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지만, 흑발에 검은눈인 반스가 캐스팅됐을 만큼 그의 미모는 절대적이다. 순정한 눈빛의 순진한 청년에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만용을 부리며 사는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치 않는 그의 깨끗한 모습은 보는 내내 설렘을 잃지 않게끔 한다.
정신과 교수인 영국인 아버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유대인 심리치료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스는 세상에 없는 듯한 완벽한 외모 때문에 오히려 배역을 따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실제 영화 속에서 그의 눈부신 미모에 여배우들의 외양이 밀려버린다. 결국, 그가 활약할 수 있는 곳은 ‘판타지’ 속 세상이다. ‘스타더스트’,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자’,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 ‘일곱번째 아들’ 등 환상물에 필모그래피가 몰려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에스토니아 해안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익히 배운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처가 세르비아를 방문했다가 암살당한 사건으로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된다)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당시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피터 대제가 서유럽 문명 수용 차원에서 에스토니아 내 독일계의 특권적 지위를 용인함으로써 독일계 문화가 크게 번성했다.
제목의 폴은 주인공의 가족이 살고 있는 영지의 이름이다. 풀들이 쑥쑥 자란 황량한 모래밭 너머로 푸르게 펼쳐진 발트해, 바다위에 기둥을 세워 얹은 저택, 첼로를 켜는 새어머니의 등 뒤 창가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푸른 바다, 인상파 그림 속에서처럼 흰 드레스를 입고 여름을 즐기는 모습이 함께 빠져들고 싶을 만큼 마냥 낭만적이다. 바닷바람에 삭아버린 저택의 겉모습을 보면 그 짠내 나는 끈적임이 조금 걱정되긴 한다.
사실 영화속 작가 지망생인 만14세 오다 본 시어링(폴라 비어)과 에스토니아인 무정부주의자 슈납스(탐벳 투이스크)간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크라우스의 오랜 준비로 이국적이면서도 시대적 배경이 살아있는 대작 러브스토리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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