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에 배우들이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노닐거나 지붕이 소외된 이들의 안식처가 되는 형식적인 면뿐 아니다. 가족들이 오해 끝에 갈등을 겪고,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화해를 하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에게 불의 전차를'에서는 형식과 내용,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장된다. 전작 '야끼니꾸 드래곤'과 후속작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A와 A´의 관계라면,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이들 작품들을 잇는 B다.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한·일 관계에서 파생된 사회·역사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온 그는 '나에게 불의 전차를'에서 국가적인 관심사에게까지 눈길을 돌린다. 최근 다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양국의 우정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도 두 나라의 톱배우를 출연시키면서.
일제강점기 말 조선이 배경이다. 일본인에게 천시받고 멸시 당하면서도 전통 기예로 한국인들을 위로한 남사당패의 꼭두쇠 '이순우'와 한국의 문화와 민속 백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양국의 관계에 마음 아파하는 청년 교사 '야나기하라 나오키'의 우정을 다룬다. 야나기하라는 실존 인물로 조선의 도자기를 사랑하고, 남사당 멤버들과도 잘 어울린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다.
여기에 나이트클럽 '울야성'의 오너인 '오무라 기요히코'와 남사당이 전 꼭두쇠 '고대석'의 가슴 아픈 과거로 인한 애달픈 가족사가 얽혀 들어간다.
오무라는 3·1운동 때 일본군이 수원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제암리 학살사건'의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1919년 4월15일 일본군경이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와서 기독교도·천도교도 약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오무라는 살아남았으나 결국 한 쪽 다리를 절게 됐다. 그렇게 온전치 못한 다리는 한국의 아픔이자 일본의 상처가 된다.
결국 이순우와 야나기하라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조선 팔도를 누빈다. 오무라는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 감옥에 갇혔으나 결국 가족의 품에 돌아가게 될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정의신월드'는 가혹한 현실에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창작한 사람의 개성이 반영됐다는 뜻의 작가주의가 한층 더 공고해졌다는 느낌이다.
'나에게 불의 전차를' 제목은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 '예루살렘' 대목 중 하나를 따온 것이다. 신시사이저의 테마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불의 전차'(감독 휴 허드슨·1981) 역시 이 구절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불의 전차를 나에게 다오. 마음의 투쟁으로부터 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공고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단점도 눈에 띈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러닝타임이 무려 210분에 달하는 만큼 관람이 쉽지 만은 않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 웃음 코드다. 상당히 개그적인 요소가 포함됐는데 꽤 웃음을 안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진지한 감정의 흐름을 끊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연기생활 15년 만에 연극에 데뷔한 차승원의 연기는 제법 괜찮다. 이순우를 맡은 그는 지난해 일본 초연 당시 어색하다는 평도 나돌았으나 큰 키로도 작품에 어우러진다. 특히, 일본 3회 때 떨어지기도 했다는 높이 약 2m, 길이 약 10m의 외줄타기에 능숙해진 모습에서 묵직한 진심이 느껴진다.
역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오무라 역의 가가와 데루유키(48)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영화 '철도원' '굿바이' 등에 출연했고 청순한 외모로 국내에서도 팬층을 확보한 히로스에 요코(33)는 야나기하라의 동생이자 오무라의 아내인 '오무라 마츠요'를 맡아 극에 화사함을 더한다.
3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볼 수 있다. 국립극장과 미추의 레이블 격인 극단 MAT가 공동 주최한다. 연극배우 김응수, 정태화, 장덕주 등이 출연한다. 2만~10만원. 02-2280-4114
정의신 월드의 확장 ★★★★
<사진> 일본 우메다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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