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진 여사는 9일 오전 4시49분 향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전남 지역 문화인들은 "한국 문화의 한축을 담당했고 문화계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던 분이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김미숙 광주무용협회장은 "공옥진 선생이 수십년전 YWCA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조그마한 체구를 활용해 새로운 춤을 선보인 것 자체만으로 한국 무용계에서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 선생님이 개발한 춤은 한국 문화계의 한 장르로 자리잡은 것 같은데 계승이 안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좋은 곳에서 후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 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윤모 광주시립극단예술감독은 "공옥진 여사와 함께 공연을 한 적은 없지만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외롭게 열심히 하신 분이다'는 것을 느꼈다"며 "춤을 사랑했고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분의 열정을 본받고 싶다"고 전했다.
박선정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은 "공옥진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1인 창무극의 창시자 공옥진 선생의 재주를 앞으로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다"며 "참담한 심정이고 전통예술의 미래를 위해서 선생의 생전 공연에 대한 기록보존작업과 함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추진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차주경 전남문화재단 사무처장은 "전남에서 태어나 춤 하나만으로 전 세계 문화계에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며 "전남도 문화재로 지정이 됐는데 전승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공옥진 여사는 1931년 전남 승주(현 순천)에서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성원목, 김연수, 임방울 등 명창들의 소리를 사사했다.
또 일본에서 무용가 최승희(1911~1967)에게 무용을 배운 공 여사는 1945년 조선창극단에 입단, 본격적으로 무용가의 길을 걸어왔다.
'아니리'와 '발림' 등을 극적으로 발전시켜 1인 창무극이라는 문화변용의 전형을 이뤄냈다. 곱사춤의 명인이며 원숭이·퓨마 등 동물을 모의한 춤을 추는 등 예술적 표현력의 창작성을 인정받았다.
고인의 1인 창무극은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닌 창작무용이라는 이유로 무형문화재 지정이 거부됐지만 2010년 11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9-6호 1인창무극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빈소는 전남 영광 농협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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