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지금 47세의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경찰관 폭력의 희생자, 교통경찰의 단속을 피해 달아난 범법자로 상반된 이미지를 미국 사회에 남긴 그는 레코드 회사 중역과 리얼리티TV 스타를 겸업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지금도 술을 마시면 그때의 악몽에 몸서리치며, 교통경찰관만 보아도 멀리 달아나고 싶어진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놓았다.
로드니 킹이 LA 폭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한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우리 모두 함께 잘 지낼 수 없는 건가요?"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을 한 이래 그의 인생은 많은 부침을 겪었다. 대개는 술 때문에 일어난 경범죄로 단속된 적이 많아서 치료 감호나 재활 프로그램에 회부 된 적도 많다. 그 덕에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고 2008년엔 '닥터 드류' 핑키의 '유명인사 재활 프로그램' 같은 코너에도 출연했다.
"요즘은 조금씩 홀짝이는 정도지, 취하도록 마시지 않는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지만 실은 지난해에도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적 있다. 1991년 3월 경찰관들의 집단 폭행을 당한 이후로는 과속단속을 하는 교통경찰관의 정지 요구도 무섭기만 하다.
그 당시 경찰관들은 곤봉으로 그를 50여차례나 난타했을 뿐 아니라 발로 차거나 전기충격기로 공격하기도 했다. 인근에 살던 한 주민이 조용히 집밖에 나와 폭행의 전말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지역 TV 방송국에 제공했고 그 처참한 광경에 미 전국이 들끓었다.
설상가상으로 백인만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경찰관들을 무죄로 판정, 석방하자 4월29일 LA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 폭동이 일어나 사흘 동안 55명이 죽고 2000명 이상이 부상하는 참사를 빚었다. 엉뚱하게 한인사회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이 사태는 5월4일에야 진정됐다.
로드니 킹은 시당국으로부터 38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신의 힙합 레코드사를 차렸다가 파산하는 등 투자 잘못으로 대부분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부지런히 명사들의 권투시합이나 방송프로그램을 쫓아다니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내면의 폭동…반항에서 구원까지의 나의 삶'이란 회고록까지 내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훌쩍 큰 키에 사근사근하고 얌전한 말씨의 그는 "그때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면서 "내가 대가를 치른 후로 미국은 나에게 충분히 잘 대해주었고 지금의 삶은 그 전에 비하면 훨씬 편안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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