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댄서 최승희, 완품영상 베일 벗는다

기사등록 2011/12/04 06:31:00 최종수정 2016/12/27 23:08:13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춤자료관 연낙재가 한국 근대무용의 여명을 연 무희 최승희(1911~1969)의 공연 모습을 담은 완품 영상을 5일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193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신무용 '명비곡' '보살춤'과 전통을 소재로 한 '장고춤' '부채춤' 그리고  1940년대 후반 베이징에서 공연해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공산당 총리가 격찬한 '풍랑을 뚫고(노사공)' 등을 추는 최승희의 전체 공연 실황이다.

 연낙재 관장인 성기숙(45)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동안 최승희의 출연작이 다큐멘터리에 삽입되는 등 단편적으로는 소개됐지만 완품으로 한 번에 조망할 기회는 없었다"며 "최승희 춤의 미학적 특징과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낙재가 5일부터 여는 '최승희 탄생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찾는 백홍천 재일본 최승희무용원장이 연낙재에 영상자료를 기증하며 성사됐다.

 영상자료와 함께 최승희가 '초립동'을 추는 모습과 월북 후 1951년 최승희 무도연구반에서 춤을 추며 지도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도 역시 처음 선보인다. 중국에서 최승희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짱치 전 중국중앙가무단장과 조선족무용가로 중국민족가무단 안무자를 지낸 허명월씨 등이 연낙재에 제공, 기증했다.
허씨는 최승희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도 내놓는다.

 강원 홍천 출신인 최승희는 19세 때인 1929년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1930년대 후반 한국 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떨쳤으며 중국의 매란방,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더불어 아시아 출신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저우, 난징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이력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1946년 남편인 문학평론가 안막을 따라 월북, 김일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우고 무용극 창작에 주력하면서 초기 북한무용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58년 안막의 몰락과 더불어 최승희 역시 1967년 숙청됐으며 2년 뒤 숨졌다. 유해는 2003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한편, 연낙재는 5일부터 30일까지 연낙재와 서울고궁박물관에서 '최승희탄생 100주년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연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논문발제와 원로회고, 증언 순으로 학술행사가 진행된다. 6일 연낙재에서는 한룡길 옌볜대 교수와 백홍천 재일본 최승희무용원장의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 워크숍'이 마련된다. 이어 12월 한 달동안 목요일마다 '영상으로 만나는 최승희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다. 최승희 관련 영상과 사진은 연낙재에서 볼 수 있다.

 kje132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