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장면 하나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 있다.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켄 정(42·정강조)이다.
켄 정은 최근 개봉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3'에서는 뭔가 비밀을 간직한 듯하면서도 변태스러워 보이는 엔지니어 '제리 왕'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25일 국내 개봉하는 '행오버2'에서는 다시 '미스터 차우'로 돌아와 전작을 능가하는 비중과 한층 업그레이된 코믹 연기를 펼쳐 보인다.
16일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켄 정은 작품 속에서 보여준 익살스럽고 유쾌한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한편으로는 예의바르며 지적인,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인 가정의 아들 모습 그대로였다.
켄 정은 "원래 성격은 조용한 편이다. 사실 어렸을 적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낯을 가리기도 했다. 집안에서도 항상 예의바르고 남을 존중하라고 교육받았다"면서 "영화에서는 황당하고 규칙을 어기는 캐릭터로 나온다. 그건 나 스스로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일종의 탈출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실제보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기하는 것에 관해서는 "누구나 진지한 면과 웃기는 면 등 다양한 면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웃기는 면을 많이 발견한 셈"이라며 "그런 캐릭터 연기가 삶의 균형을 잡는 것 같다. 집에서는 아버지로, 남편으로서 현실에 충실한 가장으로 살고, 영화에서는 웃기고 황당한 캐릭터가 되면서 인생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켄 정은 만 16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의 듀크대 의대에 들어간 '엄친아'다. 내과의사라는 안정적인 삶을 벗어던지고 배우라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연기과목을 수강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연기에 반했다. 사실 액팅스쿨에도 합격했지만, 이미 의예과 학생이었고 의과대학원 진학이 정해져 있어서 의사의 길로 갔다. 전업 의사로 활동하면서 취미로 연기를 했는데 그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첫 영화인 '사고친 후에'에서도 의사로 나왔는데, 이후 출연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내친 김에 배우로 전업을 해볼까 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특히 "내 인생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 미래는 앞으로도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시간은 제한돼 있다.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용감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내 도전은 성공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게 됐다. 대단히 만족한다"고 말해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행오버'에서의 알몸 신은 사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대단한 임팩트였고, 대중에게 그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지난해 MTV는 '최고 황당한 순간상'을 안겨주며 높이 평가했다.
켄 정은 "그건 내 아이디어였다"면서 "원래 대본에서는 미스터 차우가 사각 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감독에게 다 벗고 나가겠다고 했다. 영화 자체가 미국 스타일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코미디라고 생각하니 그게 훨씬 충격적이고 웃기고 또 튈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코믹하다 못해 황당한, 이 장면에는 켄 정 나름의 아픈 사연이 감춰져 있었다.
용기를 내서 했던 알몸 연기는 그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줬다. 오히려 '인기'는 부록에 불과했다. 더 큰 기쁨은 그의 말처럼 "일종의 치유이자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켄 정은 "10년 전이었다면 벌거벗고 뛰쳐나오는 장면을 두려워서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하지만 인생은 짧다. 인생을 두려워하다보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 나는 어떻게 할까 두려워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을 했고, 미친듯한 황당한 캐릭터 연기가 카타르시스를 줬다"고 돌아봤다.
베트남계 혼혈인 켄 정의 부인은 다행히 완쾌돼 의사로 일하고 있고, 지금도 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후원자다.
켄 정은 당시 많은 배려를 해준 '행오버'의 연출자 토드 필립스 감독과 여러 동료 배우들,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감독과 동료들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자 모두들 진심으로 위로해줬다. 워너브러더스에서도 내 분량의 촬영이 없을 때는 아내가 있는 LA를 종종 다녀올 수 있도록 항공권을 마련해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켄 정은 '트랜스포머3' 출연을 자신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생각하며 반기고 있다.
"제리 왕 캐릭터가 코믹하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는 코미디가 아니라 SF다. 따라서 내 연기의 폭을 넓혀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디셉티콘에 맞서는 장면은 CG였기 때문에 막대기를 보면서 디셉티콘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다.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연기의 폭이 깊어지고 또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액션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고, 드라마든 SF든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배역을 맡고 싶다."
미국에서 태어나 1986년에 친지 방문차 한 차례 방문한 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모처럼 한국을 찾은 켄 정은 "마치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는 말로 모국에의 애정을 드러내면서 "내가 한국 배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인들과 꼭 함께 일하고 싶다. 한국은 나의 모국이고,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이기 때문"이라고 밝혀 한국에서도 활동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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