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이 온다' 주체적 여성 서사로 전면 각색
소리꾼 박애리·정은혜, '춘풍처' 더블 캐스팅
주식 투자 풍자·관객 참여형 놀이판…27일 개막
"요즘 제 안에 다른 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어머, 애리야. 국극(國劇) 하면 잘할 것 같다'라는 김성녀 감독님의 얘기도 들었어요." (박애리)
3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장에서 열린 마당놀이 신작 '춘풍처도 온다' 기자간담회에서 소리꾼 박애리와 정은혜가 각각 춘풍처를 맡은 소감을 밝혔다. 국립창극단 선후배 출신인 두 사람은 이번 작품을 통해 국립극장 마당놀이 무대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이번 신작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두 차례 공연해 평균 객석점유율 97.2%를 기록한 '춘풍이 온다'를 새롭게 각색한 것으로, 춘풍처의 활약을 통해 고전 속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조명했다. 춘풍처는 고전 '이춘풍전' 속 남편의 방탕한 생활로 무너진 가정을 일으키고 어리석은 남편까지 변화시키는 역으로 나온다.
주식 투자 열풍 등 오늘날 세태를 풍자하는 요소를 더해 고전의 해학을 동시대적으로 확장했다. 연극 '산을 옮기는 사람들'로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김민정 작가가 각색과 드라마터그로 참여하고, 연출과 연희감독은 40여 년간 '마당놀이의 여왕'으로 활약해 온 김성녀가 맡았다.
이날 박애리는 춘풍처가 지닌 동시대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그는 "집안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무리한 투자를 하기도 하는 현상은 요즘 시대에도 있는 일"이라며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서, 현명하게 가정을 일으키는 춘풍처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가슴이 시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방의 관객을 다 아우르며 호흡해야 하는 마당놀이의 특성에 맞춰, 힘을 뺀 동시대적 코미디 연기를 배워가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주인공 춘풍처의 매력을 드러내는 주변 인물들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미워할 수 없는 한량 '춘풍' 역의 이광복은 "과거엔 춘풍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이번엔 춘풍처를 뒷받침하는 보조적 역할"이라며 "오히려 허랑방탕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을 뻔뻔하게 강조해 완벽한 '나쁜 놈'으로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블 캐스팅된 추현종 역시 "저의 장점인 유쾌함으로 춘풍을 밉지 않게 풀어내 관객에게 따뜻함과 즐거움을 드리겠다"며 "두 춘풍의 색깔이 전혀 달라 여러 번 보셔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춘풍처를 충실히 보필하는 몸종 '오목' 역은 김율희와 김나니가 맡아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난해 '홍길동이 온다'에서 소년 홍길동을 연기했던 김율희는 "이번엔 성별이 바뀌어 마님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까불까불하고 귀여운 감초 역할로 돌아왔다"며 "진심을 다해 무대를 즐기겠다"고 했다.
개성 넘치는 조연들도 재미를 더한다. 평양 최고의 미녀 기생 '추월' 역을 6년 만에 다시 맡은 홍승희는 "미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야식을 끊고 팩도 열심히 하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추월이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예전엔 춘풍을 어떻게 꾀어낼지 궁리했다면, 이번엔 숨만 쉬어도 넘어오게 만들겠다는 능청스럽고 영리한 여유를 보여주겠다"며 성숙해진 캐릭터 해석을 예고했다.
배우들과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꼭두쇠' 역 정준태는 "꼭두쇠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과 배우 사이를 잇는 것"이라며 "재미있게 보시려는 관객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빨리 찾아내, 요즘 이야기도 섞어가며 신명 나는 소통을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무대는 평양 기방을 콘셉트로 모란·나비무늬와 팔각등, 신윤복의 그림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진다. 14명의 무용수가 기생 군무와 한량무를 선보이는 가운데, 공연 전 엿장수 등장부터 무대 위 고사, 배우와 함께하는 뒤풀이까지 다 함께 추임새를 넣고 즐기는 놀이판이 열린다.
27일부터 내년 1월 24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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