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 곳 전산 비용 '상상 이상'…최소 6개월 테스트 필수
외국계 33% "투자 축소" 경고·홍콩도 2028년 하반기로 연기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유관기관이 2일 발표한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초안)'에 따르면 유관기관의 자체 인프라 개발은 2027년 10월 완료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후 600여개 국내외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전산 연계와 최소 6개월 이상의 통합 테스트 기간이 추가로 필요해 실제 전환 시점은 2028년으로 설정됐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은 거래일로부터 2영업일 뒤 결제가 이뤄지는 'T+2'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도 그 돈을 당장 출금할 수 없고 2영업일 후 즉 3거래일 날 주식 대금이 들어온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주식은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모레(2영업일 후) 주느냐"며 결제주기 단축을 지시한 바 있다.
그러자 금융당국은 내년 10월 시행을 목표로 'T+1' 결제 체계 도입을 위한 제도 설계에 착수했는데 이번 로드맵 발표에서는 제도 도입 시기가 당초 목표 시점보다 연기됐다.
박상욱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 본부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KRX 서울사옥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2028년이라는 시점은 2년 전부터 주요 증권사 설문조사와 해외 사례를 종합해 가시적 목표를 도전적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확정적인 시행 시점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환 목표 시점이 2028년으로 제시된 배경에는 전산 개편 부담과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 우려가 있다. 결제주기 단축은 증권사 54곳, 자산운용사 498곳, 수탁기관 20곳, 사무관리사 10곳 등 600곳이 넘는 기관의 시스템을 일괄 개편해야 하는 과제다.
박 본부장은 "600개 기관의 역량과 구축 현황이 달라 전체 비용을 현재로선 추산조차 할 수 없다"며 "초기 전산 개발비용뿐 아니라 구축 후 유지·보수 비용, 시차 대응을 위한 야간 데스크 운용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금이 투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별도의 비용 분담이나 지원 구조가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각 금융회사가 자체 예산으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세부 개발 요건이 확정되고 내년 정도는 돼야 전체적인 비용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투자자의 구조적 제약과 자금 이탈 우려도 작용했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8.9%, 거래대금의 24.7%(올해 상반기 기준)를 차지한다. 그러나 다단계 수작업 절차, 미국·유럽과의 시차, 새벽 시간대 원화 유동성 부족(23시~09시 외환시장 거래 비중 6.2%) 등이 상존한다.
실제로 거래소가 해외 증권사와 보관기관, 글로벌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3%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T+1' 체계로 전환되면 한국 시장 투자 비중을 축소할 수 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32곳 중 84.4%(27곳)는 적정 결제주기 단축 시점으로 2028년 하반기 이후를 희망했다.
국내 증시 특유의 엄격한 결제 안정성 관리도 시점 설정의 원인이다.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에 따르면 유럽(7.14%)이나 미국(2~3%)과 달리 한국 증시의 결제실패율은 '0% 근접' 수준이다. 결제 불이행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만큼 충분한 사전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유관기관의 설명이다.
박 본부장은 "서구권과 달리 한국 시장은 결제 안정성에 대한 완벽주의 경향이 있다"며 "미국도 9차례에 걸쳐 반복 테스트를 거친 만큼, 우리도 6개월 이상의 통합 테스트를 거쳐 안전성이 검증돼야 최종 가동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의 추진 일정과 아시아 시장의 신중한 기조도 반영됐다. 미국은 로드맵 발표(2021년 12월) 이후 약 2년 5개월간의 준비와 통합 테스트를 거쳐 2024년 5월에야 도입했고, 유럽 역시 2년 6개월 전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10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 주요국은 시장 여건에 맞춰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경쟁 시장인 홍콩은 당초 내년 4분기였던 시행 일정을 2028년 하반기로 연기했고 일본과 싱가포르는 아직 구체적인 시행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 호주 역시 차세대 전산 인프라 교체가 끝나는 2029년 이후에나 전환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박 본부장은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권역 시장이 비슷한 시기에 가는 것이 유리하다"며 "경쟁 시장인 홍콩이 결제주기 단축을 연기한 점 등 권역 내 정합성도 일정 수립 과정에서 감안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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