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3개 걸자" 약속대로…한국 사격, 50m 소총 금·은·동 싹쓸이(종합)[장애인AG]

기사등록 2026/10/22 17:31:44

혼성 50m 소총 복사서 이장호·박진호·황정민 나란히 시상대

[서울=뉴시스]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안게임 사격 혼성 50m 소총 복사에서 금, 은, 동메달을 딴 이장호와 박진호, 황정민. (사진 =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도요타=뉴시스]공동취재단 = "중국이 국기 3개를 올렸는데, 우리도 한 번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22일 오전 황정민(44·경기도장애인체육회)이 대표팀 선배 박진호(49·강릉시청)에게 건넨 말이다.

중국은 이틀 전 혼성 10m 공기소총 복사(SH1) 결선에서 금·은·동을 휩쓸었다.

박진호는 "그래 열심히 해보자"고 답했다.

몇 시간 뒤, 일본 아이치현 종합사격장 시상대 위로는 태극기 3개가 나란히 게양됐다.

한국 장애인 사격이 50m 소총 한 종목에서 금·은·동을 모두 쓸어 담았다.

이장호(37·청주시청)는 이날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안게임 사격 혼성 50m 소총 복사(스포츠등급 SH1) 결선에서 24발 합계 248.2점을 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은메달은 박진호(247.5점), 동메달은 황정민(22발 합계 227.0점)이 차지했다.

한국이 장애인아시안게임 한 종목에서 금·은·동을 싹쓸이한 건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국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녀가 함께 겨루는 이 종목 결선에는 8명이 출전한다. 10발까지 모든 선수가 사격한 뒤 12발째부터 2발마다 최하위 선수가 1명씩 탈락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2명이 24발째에 금메달 주인을 가린다.

결선은 한국 선수 셋의 집안 싸움이었다.

박진호가 12발까지 선두를 지켰고, 황정민이 13·14발 뒤 잠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발째 4위를 달리던 완니파 르앙위라이(태국)가 탈락하면서 한국 선수 3명이 메달 색을 두고 막판 경쟁을 벌였다.

15발부터 20발까지 모두 10.3점 이상을 쏘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한 이장호가 이 시점에 206.7점으로 1위에 올라섰고, 2위 박진호(206.6점), 3위 황정민(206.5점)과의 차이는 0.2점에 불과했다.

22발 뒤 3위에 있던 황정민이 동메달을 확정했다.

이어진 금메달 승부에서 이장호는 끝까지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24발째 10.4점을 쏘며 박진호를 0.7점 차로 따돌렸다.

이장호와 박진호는 19일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SH1)에서도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당시 은메달은 박진호, 동메달은 이장호였는데, 사흘 만에 순위가 뒤바뀌었다.

경기 내내 전광판에 한국 선수 3명의 이름이 상위권에 위치하자 사격장은 한국 관중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경기를 마친 세 선수도 밝은 표정으로 서로를 축하했다.

박진호에게는 대회 전부터 품어온 바람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는 개막 직전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꼭 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후배들과 1·2·3위에 함께 들어가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패럴림픽 출전권(쿼터)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경기 후 만난 박진호는 "출전하는 어떤 종목이든 후배들과 1·2·3위를 하기를 바랐다"며 "쿼터가 한 장 더 나와서 참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장애인 사격의 간판인 박진호는 완전하지 않은 몸으로 이번 대회를 치르고 있다.

그는 "원래 결선에서는 팔을 안 푸는데, 왼쪽 어깨 통증 때문에 서너 번 풀 수밖에 없었다"며 "팔을 풀고 다시 잡았더니 영점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장호가 "진호 형님 컨디션이 좋았으면 금메달을 따셨을 것"이라고 하자, 박진호는 "아니다. 우리 셋 중 누구나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날 본선 8위로 결선행 막차를 탔던 이장호는 "결선만 가자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그에게 집중력을 심어준 건 상위권에 자리한 대표팀 동료들이었다.

이장호는 "결선에서 4등까지 내려갔을 때 '나 때문에 셋이 함께 시상대에 서는 게 안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고, 그 뒤로 더 집중했다"고 돌아봤다.

이장호에게 50m 복사는 특별한 종목이다.

2024 파리 패럴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은퇴까지 고민할 만큼 깊은 슬럼프를 겪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게 화약총 50m 종목이었다.

이장호는 "유럽 선수들이 잘 쏘는 종목이고, 한국이 패럴림픽에서 메달이 없는 종목이기도 해서 더 집중해 보려 했다"며 "그게 다시 올라온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지만, 이장호는 "메달은 정말 기분 좋지만 점수로 보면 아직 부족하다. 더 올라가야 한다"며 만족하지 않았다.

2020년 교통사고 뒤 사격을 시작한 황정민은 처음 출전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황정민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이렇게 큰 국제대회에 함께 선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미소지었다.

결선 도중 1위에 올랐을 때를 묻자 "한 발 한 발 집중하느라 몇 등인지도 몰랐다.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안 돼서 다음 발만 준비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