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 배경으로 한 가족의 삶 조명
현실 무게 견디며 각자의 환상에 기댄 이들
김성령·최원정·장승조·권율·김경남 등 출연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유리는 투명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작은 충격에도 산산조각 날 만큼 연약하다.
연극 '유리동물원' 속 인물들이 품은 희망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환상에 기대어 고된 현실을 견디지만, 그 희망은 언제 깨질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
'유리동물원'이 지난 17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1944년 발표한 '유리동물원'은 그에게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이야기는 대공황의 여파가 드리운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삶을 그린다.
화려한 젊은 시절의 기억에 매달리는 어머니 아만다, 집 안에서 유리 동물들과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딸 로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아들 톰이 그 중심에 있다.
남편이 떠난 뒤 두 자녀를 홀로 키워온 아만다는 딸의 결혼이 가족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로라의 결혼 상대는 가족을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로라에게 어머니의 기대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톰 역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집에도 잠시 활기가 돈다. 어머니의 재촉에 톰이 직장 동료 짐을 집으로 초대하면서다.
아만다는 딸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 들뜨고, 로라 역시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짐과의 재회에 마음을 연다. 그러나 짐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가족의 희망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일견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쉽게 탓할 수가 없다.
아만다는 여성의 안정적인 삶이 결혼에 달려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다. 로라는 신체적 장애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자유에 집착하는 톰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도 온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어 이들의 갈등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8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환상 하나쯤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쉬운 것도 아니다.
결국 톰은 가족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로라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것처럼도 보인다.
꿈꾸던 길을 택해도 끝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더 큰 비극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에서 아만다는 김성령, 최정원이, 톰은 장승조, 권율, 김경남이 연기한다. 로라는 정운선, 정새별, 임세미가 맡았다. 짐 역에는 문유강, 배훈, 최정우가 출연한다.
공연은 다음 달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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