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미루고 러 경유까지 풀어줬는데…푸틴, 영토·안보 요구 그대로

기사등록 2026/10/22 13:59:14

윗코프, 3시간 회담서 새 제안 전달…러, 돈바스·우크라 안보 요구 고수

데이터센터·에너지 협력도 논의…CNN, 트럼프의 경제 유인 전략 한계 분석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AP/뉴시스]스티브 윗코프 미 대통령 특사(왼쪽)가 2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영접나온 키릴 드미트리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와 악수하고 있다. 윗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2026.10.21.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스티브 윗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가 전달한 새로운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에 대해 러시아 크렘린궁이 실질적인 가치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은 21일(현지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 윗코프 특사의 회담을 분석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적 이익을 제공해 종전 합의를 끌어내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기존 전쟁 목표에서 물러설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과 윗코프 특사는 이날 약 3시간 동안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과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윗코프 특사는 푸틴 대통령에게 새로운 종전 제안을 검토하고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의 3자 협상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윗코프 특사가 전날 노르웨이에서 논의한 내용에 관심을 보였다.

윗코프 특사는 2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미국·유럽 주요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전후 안보 보장과 새로운 종전 방안, 러시아에 제공할 경제적 유인책 등이 논의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CNN은 전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보좌관은 회담 후 윗코프 특사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측의 새로운 제안을 전달했다고 설명하면서 "실제로 이런 제안들에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내용이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로 구성된 돈바스 지역 전체를 통제하고, 우크라이나의 향후 안보 체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 CNN은 러시아가 이러한 핵심 요구에서 물러설 의사를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러시아가 협상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CNN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이날 회담 후 다음달 중순 미국·우크라이나와의 3자 종전 협상을 재개하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상 재개 의사가 영토와 안보 문제에서 양보하겠다는 뜻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슬로=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두 번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레(오른쪽) 노르웨이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왼쪽 두 번째) 핀란드 대통령, 스티브 윗코프 미국 특사와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6.10.21.
미국은 앞서 러시아에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과 국제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는 관련 경유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새로운 대러 제재법에 따른 주요 제재와 관세의 시행도 유예했다.

CNN은 이러한 조치에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높은 연료 가격을 낮추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산 경유의 시장 공급을 늘려 미국의 연료비 상승 압력을 완화하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중단하도록 하는 에너지 휴전 구상도 내놓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상응하는 공격 중단을 요구했고, 양측의 에너지시설 공격을 멈추는 합의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도 깊어졌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탄도미사일 공격과 관련한 미국의 조기경보 정보가 일부 전달되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도부 교체까지 요구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미국의 탄도미사일 조기경보 정보 협력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 완화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종전 협상에서 양보해야 할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자국의 대미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최근 미국과 체결한 러시아산 경유 공급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가 미국에 수출하는 비료 물량을 늘릴 수 있다며 추가 경제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앵커리지=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앨먼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5.08.16.
러시아의 대외 경제협상을 담당하는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최고경영자도 회담 후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분야의 여러 사업을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보인 또 다른 유화적 조치는 장기간 수감돼 있던 미국인 스티븐 허버드(74)의 석방이었다. 허버드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에 붙잡혔으며, 이후 용병 활동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약 4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CNN은 허버드가 외딴 러시아 교도소에 수감된 동안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했다는 보도도 있었다고 전했다.

윗코프 특사는 허버드 석방을 "인도주의자다운 행동"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백악관도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능력을 보여주는 성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게시된 성명은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미국에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이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장교 출신인 푸틴 대통령이 허버드 석방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경제협력 사업을 논의하고 미국인 수감자를 석방했지만, 전쟁 종식의 핵심 조건인 우크라이나 영토와 안보 문제에서 양보할 의사를 보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이 CNN의 분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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