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 돈바스 문제 후순위 협상·러시아어 지위 조정 제안…5일 제명 결정
여당도 종전 조건 놓고 이견…우크라 국민 61% '안전보장 대가 돈바스 철수' 반대
키이우인디펜던트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 최근 종전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공습이 계속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종전 협상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인들의 협상 제안이 향후 선거를 겨냥한 움직임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는 야당 유럽연대 의원단에서 활동하던 올렉시 곤차렌코 의원이 있다. 그는 지난 4일 현지 주요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제3국의 중재로 양측이 여러 단계의 합의를 이루면서 서로 양보하고, 가장 큰 영토 쟁점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문제는 마지막에 다루자는 내용이었다.
곤차렌코 의원은 러시아어에 우크라이나 내 다른 소수민족 언어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모스크바와 연계된 우크라이나정교회의 활동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러시아와 합의하는 것이 곧 항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지금 우리가 러시아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아니다. 국가가 사라질 때까지 싸울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연대 의원단은 다음 날인 5일 곤차렌코 의원의 제명을 결정했다. 당 측은 종전 방안과 우크라이나의 미래 안보체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당의 기본 원칙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명 결정은 14일 의회 본회의에서 공식 발표됐다.
유럽연대는 우크라이나의 독립, 국가 정체성, 독자적인 안보체제를 포기하는 타협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의원단 소속 미콜라 크냐지츠키 의원도 러시아가 돈바스 점령 목표를 포기하거나 양보할 뜻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만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침략국의 책임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키이우모힐라아카데미 정치학 교수인 올렉시 하란 민주이니셔티브재단 연구고문은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에는 엄청난 양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가 러시아에 점령돼 있다며 "푸틴은 협상이나 타협에 관심이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종전을 둘러싼 논쟁은 집권 여당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올하 바실레우스카-스마흘류크 의원은 최근의 종전 관련 발언들이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 대통령 교체, 선거 실시에 대한 국민 반응을 알아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론 우리에게 평화는 필요하다"면서도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평화를 이루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여당 소속인 다닐로 헤트만체프 의회 재정·조세·관세정책위원장은 정치권을 '평화파'와 '전쟁파'로 구분해 왔다. 자신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평화파'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파'는 전쟁으로 이익을 얻고 우크라이나인들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기를 원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논쟁에는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온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이호르 테레호우 시장도 가세했다. 테레호우 시장은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자 현 영국 주재 대사인 발레리 잘루즈니의 기고문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미래처럼 묘사한다고 해석했다. 테레호우 시장은 "전쟁을 견딜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데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고 밝혔다.
테레호우 시장의 발언은 향후 정치적 행보와도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소시스가 올해 봄 실시한 가상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테레호우 시장과 헤트만체프 의원이 공동 정치세력을 구성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의 여당보다 높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친정부 의원들을 인용해 테레호우 시장이 최근 정부 개편 과정에서 총리직 후보군에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여당 의원들은 일부 정치인이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앞세우고 있다며 차기 선거를 의식한 대중영합적 발언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란 교수 역시 집권 세력이 국민이 어느 정도의 타협을 받아들일지 반응을 시험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약 500명에게 종전 협상이 어려운 이유를 물은 별도 문항에서는 84%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복 의도를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합의를 위해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73%가 반대했다. 두 문항에 모두 이같이 답한 비율은 64%였다.
같은 10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필요한 만큼 전쟁을 견딜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장기전을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모든 휴전안에 대한 반대를 뜻하지는 않는다. KIIS가 지난 9월 별도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강화와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지속한다는 조건 아래 현재 전선에서 즉각 휴전하는 방안에 69%가 찬성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철수 이후 러시아군이 인접 지역으로 진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다. 여당 소속 미키타 포투라예우 의원은 "러시아의 요구 조건은 잘 알려져 있다"며 "모스크바의 조건대로 평화를 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가의 파괴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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