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럭 "80년된 세계 안보보장 더 어려워"
"중동 3국 '메카협정', 타당한 방향 전환"
WSJ "미국, 이란 부담 걸프에 떠넘기나"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걸프 각국에 미국의 안전보장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 방위에 힘쓰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톰 배럭 주(駐)튀르키예 미국대사 겸 시리아·이라크 특사는 20일(현지 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안보포럼에서 "수십년간 국제안보의 토대였던 합의들이 중대 변화를 겪고 있으며, 중동을 비롯한 각국은 역내 협력을 통해 자국 안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0년간 세계 안보보장을 맡아온 미국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며 "이번 행정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포기가 아닌, 기존의 관계를 재조정하자는 메시지"라고 했다.
배럭 특사는 중동 산유국이 석유를 미국 달러화로만 판매하는 대신 미국이 중동 안보를 보장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해 "더 이상 워싱턴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어 "미국인들은 중동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걸프 국가들도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럭 특사는 그러면서 "역내 각국은 안보 파트너십을 다변화하고 방위자산과 안보 자원을 다양화하는 등 합리적 조치를 이미 상당 부분 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튀르키예가 8월 체결한 집단안보 체제인 '메카 공동방위협정'에 대해 "규모가 작고 다변화된 동맹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역내 움직임은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대외 개입을 축소하고 각국의 자체 방위를 촉구하는 메시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미 수차례 나왔지만, 이란 사정권인 카타르에서 이 같은 입장을 직접적으로 밝힌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걸프 주요국은 처음부터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 개시를 강하게 만류했으나 묵살당했는데, 정작 이란의 전방위 보복 공격 피해는 자신들이 떠안았다는 불만을 품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걸프 각국은 최근 예멘 친(親)이란 무장 세력 후티의 사우디 고강도 공습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끝내 관여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WSJ은 이에 대해 "배럭 특사 발언은 미국이 발을 빼고 분노에 찬 적을 상대하는 부담을 걸프에 떠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며 "이들 국가는 미국을 대체할 만한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을 안보 파트너로 계속 신뢰해도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미국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안보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다수 나온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동특사를 지낸 바버라 리프는 같은 날 "상황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될지, 각국의 자력 방어에 어떤 방식이 가장 적합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미국이라는 강력한 파트너는 필요하다"며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리프 역시 "역내 국가들은 안보 파트너십을 다변화하고 방위자산과 안보 자원을 다양화하는 등의 합리적 조치를 이미 상당 부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미국의 중동 개입을 축소해온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