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수행평가는 20.9%에 불과…채점 부담·민원 여전
경기지역 한 고등학교 과학 교사는 서·논술형 평가의 현주소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서·논술형 평가가 학생의 생각과 근거보다 제시된 조건과 정해진 표현·단어의 포함 여부를 확인하는 이른바 '키워드 채점'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을 경기교사노동조합이 분석한 결과, 도내 중·고교 교사 1283명 가운데 99.8%가 서·논술형 평가를 실시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99.8%는 서·논술형 문항을 학교 평가에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일 뿐, 학생의 생각과 근거를 자유롭게 쓰는 개방형 평가가 온전히 이뤄진다는 뜻은 아니다.
학생이 자신의 견해와 근거를 자유롭게 작성하는 방식으로 서·논술형 평가를 운영한다는 응답은 20.9%에 그쳤다. 반대로 55.9%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23.2%는 평가에 따라 개방형 문항과 정답이 정해진 문항을 함께 활용한다고 밝혔다.
수행평가와 정기고사에서 모두 서·논술형 평가를 실시한다는 응답은 58.9%, 수행평가에서만 시행한다는 비율은 40.6%를 보였다. '정기고사에서만 실시'는 0.3%였다. 정기고사는 시험 직후 채점과 이의신청 처리를 짧은 기간 내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수행평가보다 서·논술형 문항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게 교사노조의 설명이다.
정기고사 서술형에서는 학생이 교과 개념이나 풀이 과정을 문장으로 설명한다. 수행평가 논술형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글로 풀어낸다. 교사들은 서·논술형 출제의 주요 어려움으로 이의 신청과 민원, 채점의 객관성·일관성 확보, 부족한 채점 시간을 꼽았다.
성적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교사는 학교와 교과협의회에서 출제 의도와 채점 기준을 다시 소명해야 한다. 특히 고교에서는 성적이 입시와 직결돼 학원이나 외부기관이 문항의 오류를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이 채점 기준을 둘러싼 분쟁을 피하려고 정답과 판단 기준이 분명한 문항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다.
채점 분량도 교사들의 부담을 키웠다. 학생 1명의 서·논술형 답안을 채점하는 데 11~20분이 걸린다는 응답이 32.4%로 가장 많았다. 21분 이상 걸린다는 응답도 26.3%(338명)에 달했고, 10분 미만은 17.9%였다.
AI 채점 기능도 교사들의 서·논술형 답안 채점 부담을 줄이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AI 채점·평가 지원 기능을 활용한 경험이 있는 교사는 39.5%였지만 그 결과를 믿을 만하다고 본 비율은 12.8%에 그쳤다. AI의 평가가 교사의 판단과 달랐다는 응답은 81.5%였고 산출 결과를 재검토하느라 업무가 증가했다는 교사도 66.5%에 달했다.
시험 출제와 평가 부담이 커지면서 고교 근무를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입시에서 자유로운 중학교를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고교학점제로 담당 과목과 평가 횟수가 늘어난 데다 성적 이의신청에 대응하는 부담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경기교사노조는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하기에 앞서 교사의 평가권을 보호하고 담당 학생 수를 줄이는 한편 충분한 채점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교사의 수업과 채점, 민원 대응 부담을 해소하지 않은 채 서·논술형 평가만 확대하면 제도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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