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공간 넘어 숙박·자연·지역 경험으로 확장
기업·창업가·프리랜서·글로벌 워커 등 제주로
일하며 지역과 연결되는 워케이션으로 진화
휴가지에서 일하는 새로운 근무 형태로 출발한 워케이션이 단순 체류를 넘어 기업과 인재가 지역의 업무환경과 생활환경을 경험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제주도는 민간 협력과 기업유치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관광형 워케이션'을 넘어 '제주형 워케이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주형 워케이션의 정책 방향과 운영 사례, 공간, 참여자들의 경험을 통해 제주가 새로운 업무·생활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조명하고 기업과 인재의 제주 이전 및 정주 가능성을 넓혀가는 현장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김수환 기자 = 아침에는 노트북을 펼쳐 업무를 시작하고, 점심에는 동네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오후에는 다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면 바닷가를 걷거나 마을을 둘러본다. 평소라면 휴가를 내야 가능한 일들이지만 워케이션에서는 업무가 이어지는 하루의 풍경이 된다.
제주에서 워케이션을 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업무를 할 수 있는 책상과 인터넷을 갖춘 공간을 찾는 데서 시작해 숙박과 식사, 운동과 문화체험을 함께 이용하고 지역의 사람과 프로그램을 만나는 형태로 넓어지고 있다.
제주도 역시 워케이션을 단순한 관광 프로그램으로만 운영하기보다 기업과 인재가 제주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기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공공 워케이션 오피스를 비롯해 민간의 다양한 워크앤스테이 공간이 운영되고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최근에는 해외 창업가와 크리에이터가 제주에 머물며 업무와 지역 체험을 병행하는 글로벌 프로그램까지 운영됐다. 워케이션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 일하는 장소와 머무는 방식, 지역을 경험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일터, 책상 하나에서 시작해 제주 생활권으로
워케이션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제주에서는 원도심과 신도심, 함덕과 애월, 서귀포 등 곳곳에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공유오피스와 회의실, 업무용 장비 등을 갖춘 곳부터 숙박시설과 결합한 워크앤스테이 형태까지 이용 방식도 다양하다.
숲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공간에서는 자연환경이 업무 전후의 일상에 들어온다. 일부 공간에서는 요가나 걷기, 해양활동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커뮤니티도 만든다.
워케이션 공간이 단순히 '일할 곳'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제주에서 며칠 또는 몇 주를 살아보는 기반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기업과 사람의 연결…제주에서 일하는 이유
제주를 찾는 워케이션 참가자의 모습도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개인의 업무를 이어가는 프리랜서부터 스타트업 종사자, 기업 재직자, 창업가와 투자자까지 배경이 다양하다. 업무 역시 사무직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과 금융, 개발, 콘텐츠, 디자인 등 여러 분야로 확장된다.
이런 지점에서 워케이션을 통해 제주에서 일하는 시간이 단순한 '출장'이나 '휴가'와 구분된다.
업무를 하면서 제주 기업을 만나고 지역의 산업과 생활환경을 직접 접하는 경험은 기업과 인재가 제주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주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직접 경험한 뒤 장기 체류나 이전을 검토할 가능성이 되는 셈이다.
다만 워케이션 경험이 곧바로 기업 이전이나 정주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워케이션은 제주와 외부 인력이 처음 관계를 맺는 하나의 접점으로 볼 수 있다.
◆해녀 문화부터 AI까지…제주 경험의 콘텐츠화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업무와 만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8개국에서 온 여성 창업가와 크리에이터 등 10명은 엿새간 제주에 머물며 자신의 업무를 이어갔다. 해녀 물질과 해양 정화, 말차 체험 등을 경험한 뒤 인공지능(AI)과 노코드 도구를 활용해 제주와 관련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직접 기획했다.
제주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다시 일의 소재가 됐다. 제주를 찾은 글로벌 워케이션 참가자들의 사례다.
이 같은 방식은 워케이션이 단순히 '제주에서 일하는 것'에 머물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에서의 경험이 개인의 업무와 콘텐츠,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면서 체류의 의미가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제주 워케이션의 방향 역시 결국 이런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건 단순한 출발점이고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는 각 공간과 프로그램, 참가자에 따라 달라진다.
◆제주에 머물 이유…워케이션의 다음 과제
편리한 업무환경과 숙박시설은 기본이고 지역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교통과 식사, 여가, 커뮤니티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성원이 실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과 함께 팀 단위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워케이션 참가자가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한 번 방문하고 돌아가는 체험을 넘어 지역의 기업이나 주민,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면 제주에서의 체류는 단순한 여행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제주가 가진 관광자원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워케이션을 통해 관광지 방문을 유도하는 것뿐 아니라 제주에서 실제로 하루를 살아보는 경험을 설계하는 게 중요해지는 이유다.
아침부터 일을 하고, 지역의 숨은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곁의 바다와 숲을 걷고, 주민과 만나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다시 숙소에서 다음 날 업무를 준비하는 일상. 워케이션은 결국 이런 평범한 일상을 낯선 제주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인 셈이다.
일하는 장소가 바뀌면 일하는 사람의 하루도 달라지고 지역과 맺는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제주형 워케이션의 다음 단계도 거창한 새로운 형태보다 제주에서 일하고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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