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권·임명권 충돌…헌법상 선례 없어
국힘 권한쟁의 청구…'청구인 적격' 본안 전 관문
靑·대법 직접 청구 가능성…다만 양측 "검토 안해"
[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양측의 헌법상 권한을 둘러싼 초유의 갈등이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매듭지어질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의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미제출과 재제청 요구를 문제 삼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가운데,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어디까지인지를 헌재가 판단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같은 달 28일 손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통령과의 실질적인 협의 없이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 이뤄져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조 대법원장은 25일 만인 지난 22일 "재제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요청을 거부했다.
이어 이튿날 추가 입장을 통해 청와대가 문제 삼은 제청 과정의 '절차적 흠결'에 대해서도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기초해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에 재제청 사유가 공문에 충분히 담겼다고 재반박하면서 양측의 공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제청·임명 절차를 두고 충돌하는 배경에는 두 기관의 권한을 나눠 규정한 헌법 조항이 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장에게는 제청권을, 국회에는 동의권을, 대통령에게는 임명권을 각각 부여한 것이다. 그간에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사전에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 뒤 제청과 국회 동의, 임명 절차를 밟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헌법이나 법률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사전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도,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밟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명시적인 해법도 없다.
결국 이번 갈등의 핵심은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어느 정도까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하는지, 반대로 대통령의 거부가 어느 선을 넘을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하게 되는지로 모인다.
법조계에선 대통령의 임명권이 단순히 형식적인 권한에 그치는 것은 아닌 만큼, 국회의 동의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반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채 후보자를 돌려보낼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뿐 아니라 국회가 후보자를 심사하고 동의 여부를 결정할 기회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권한쟁의심판이 해법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나 대법원이 직접 권한쟁의 당사자로 나설 경우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가운데 상대방의 조치로 어느 권한이 침해됐는지가 각각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양측 모두 현재로서는 직접 헌재 판단을 구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지난 23일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와 관련해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고, 대법원도 별도 심판 청구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국민의힘이 먼저 헌재 문을 두드린 상태다.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이 대통령이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한 것이 국회의 대법관 임명동의권과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대통령의 임명동의안 미제출과 재제청 요구가 무효라는 점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 헌재가 곧바로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라는 본질적인 쟁점까지 판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본안에 앞서 청구 주체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국회의 권한 침해를 다툴 수 있는지를 따지는 '청구인 적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과거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행위를 문제 삼아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권한쟁의 사건에서 국회의 권한을 개별 의원이 대신 다툴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 2015년 선고된 'WTO 정부조달협정 사건'에서도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은 국회라는 기관에 부여된 권한이고 개별 의원의 심의·표결권은 국회 내부에서 행사되는 권한이라는 점 등을 들어 청구를 각하했다.
반면 지난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미임명 사건에서는 국회 자체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상대로 심판을 청구해 본안 판단까지 이어졌다.
헌재는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마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이 국회의 헌재 구성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번에는 손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동의 절차 자체가 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다르다.
헌재가 국민의힘 측 청구의 적법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대통령이 제청받은 후보자의 임명동의 절차를 국회에 넘겨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지 등이 주요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청구인 적격 등의 문제로 각하할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경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사건이 끝날 수도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제청 문제를 둘러싸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만큼 현 상태가 이어지면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조 대법원장은 전날 추가 입장에서 "대법관 공백 장기화로 인한 국민 불편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면서도 후속 인선 방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정치적 협의로 갈등을 풀지 못할 경우 어느 형태로든 헌재가 세 헌법기관에 나눠진 대법관 임명 권한의 경계를 처음으로 정리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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