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성장 전망 상향…OECD 올해 3.7% 예상
수출 성과 가계·다른 업종 확산 더뎌…청년 고용도 부진
고유가·고환율에 물가 불안…금리 상승은 이자 부담 키워
강남권 약세 속 서울 외곽·경기 집값 상승…공급 확대 관건
이 부총리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반도체 호황으로 성장률 전망치는 잇따라 높아졌지만, 수출 증가세가 반도체에 쏠리면서 성장의 성과가 가계와 다른 업종으로 확산되는 속도는 더디다.
K-양극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물가와 금리 상승이 가계와 자영업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서울 외곽으로 번지는 집값 상승세를 진정시키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일도 새 경제수장 앞에 놓인 과제다.
2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의 임명안 재가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물가 안정과 민생을 정책 최우선순위에 두고, 잠재성장률과 성장 체감도를 동시에 잡겠다고 역설했다.
물가 안정을 통해 양극화를 줄이고, 성장의 성과가 국민 삶에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제 지표만 보면 현재 우리 경제 성장세는 양호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6%,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을 이끌고 있다.
올해 전망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존 2.6%에서 3.7%로 대폭 상향 조정했고, 정부도 5년 만에 최고치인 3%를 내놨다. 한국은행도 3.3% 성장을 전망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3.5%)와 JP모건(3.8%), 씨티(3.7%) 등 3% 중후반대의 전망치를 내놓는 해외 기관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부총리의 취임 일성처럼 그가 이끄는 이재명 정부 2기 경제팀은 경제 양극화·물가 불안·잠재성장률 저하 등의 복합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성장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수출 증가세가 반도체에 집중되고 그 성과가 다른 업종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으면서 산업 간 성장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일 발표한 '정책 과잉대응(Policy Overkill)으로 인한 K 양극화 고착화 가능성을 살펴야 할 때' 보고서에 따르면, 총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약 47.5%로, 전년 동월(25.9%)보다 약 1.8배 높아졌다.
전체 수출 증가세가 반도체에 집중되면서, 반도체를 제외한 품목의 수출 비중은 같은 기간 74.1%에서 52.5%로 21.6%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가계 실질소득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0.3%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에는 1.3% 줄었다. 정부 지원금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계가 벌어들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가 1년 전보다 적어졌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반도체 수출 경기 호조에 따른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이 확실하게 내수(가계)로 파급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3.2%로 0.7%p 높이면서, 상향분의 약 0.6%포인트(p)가 반도체 호황과 그 파급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취업유발계수가 낮은 반도체 중심의 성장이 고용시장 전반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5~29세 취업자 수는 46개월 연속 감소했고, 고용률은 44.1%로 전년 동월보다 1.0%p 떨어졌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관련 기업과 근로자에게 집중되면서 비반도체 업종과의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된 만큼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도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 부총리는 물가 안정이라는 과제도 안았다. 물가 상승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낮춰 성장의 성과가 민생으로 확산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를 기록했다. 구입 빈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산출한 생활물가지수는 3.2%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여기에 최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도 오르고 있어 수입 원자재와 물류비 부담이 커지면 생활물가에 추가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6%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미 8월까지 누계 상승률이 2.6%에 달한 상황에서 유가와 환율마저 다시 오르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정부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상기에 물가까지 오르면 대출이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는 이자와 생활비 부담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한국은행이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출금리가 0.25%p 상승하면 전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 부담은 약 3조2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차주 1인당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16만3000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금리가 0.50%p 오르면 1인당 추가 이자 부담은 32만7000원까지 확대된다.
이와 함께 부동산 시장 과열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도 이형일호의 주요 과제다.
정부는 세제개편을 통해 비거주 1주택과 초고가 주택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지만 부동산 시장 과열은 서울 외곽과 경기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의 9월 둘째 주 조사에서 강남구는 0.36%, 서초구는 0.26% 각각 떨어져 6주 연속 하락했다. 송파구도 0.12% 내려 2주째 약세를 이어갔다.
반면 중랑구는 0.51%, 도봉구와 서대문구는 각각 0.47%, 성북구는 0.43% 올랐다. 경기 지역 상승률도 전주 0.17%에서 0.18%로 높아졌다.
정부는 세제개편으로 고가 주택에 집중된 수요를 억제하려 했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서울 외곽으로 매수세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정부가 얼마나 빨리 주택 공급을 늘리고 전월세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도 세제와 금융 정책을 활용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부총리는 후보자 시기이던 지난 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집을 가지고싶다는 기본적인 의지는 있지 않겠나"라며 "그런 측면에서 잘 구하실 수 있도록 공급을 늘리는 게 저희의 대책이다.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세제든 금융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국민이 이를 체감하려면 물가를 안정시키고 성장의 성과가 다른 업종과 지역으로 퍼져야 한다"며 "K자 양극화 완화와 부동산 시장 안정, 주택 공급 확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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