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재결정·자료제출명령 잇따라 효력 정지
집행정지 인용돼도 본안서 처분 유지 사례 다수
쿠팡은 '회복 어려운 손해'보다 조사권 근거 쟁점
[세종=뉴시스]임하은 기자 =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에 불복해 신청한 집행정지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이 오는 23일 이전 나올 전망이다. 최근 공정위의 조사·제재를 둘러싸고 법원이 잇따라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이번 판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다만 집행정지는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처분이나 명령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절차다.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법원이 공정위의 조사나 처분 자체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쿠팡 사건은 이미 내려진 제재가 아니라 현장조사 단계에서 법적 근거와 절차를 다툰다는 점에서 기존 사건과도 차이가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의 제재뿐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내려진 명령에 대해서도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인쇄용지와 밀가루 담합 사건에서는 공정위가 업체들에 내린 가격 재결정 명령의 집행이 정지됐다. 한화그룹 조사 과정에서 내려진 자료제출명령도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행정소송법은 소송이 제기돼도 행정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은 정지되지 않는다는 '집행부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다만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를 막을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공정위 처분과 관련한 집행정지 신청의 법원의 인용률은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약 64%다. 법원은 본안 판단과 별개로 처분을 당장 집행했을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는지 등을 따져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한다.
◆집행정지 인용이 '패소 예고편'은 아니다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공정위의 조사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실제 집행정지가 인용된 뒤 본안소송에서는 공정위 처분이 유지된 사례도 적지 않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당시 공정위의 가격 재결정·보고 명령은 업체들의 신청이 인용되면서 효력이 정지됐다. 그러나 이후 본안 소송에서는 해당 명령이 적법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가습기살균제 표시광고 사건에서도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2018년 공정위가 부과한 행위금지·공표명령 등에 불복해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공표명령의 집행은 소송 과정에서 정지됐지만 애경산업은 5년8개월, SK케미칼은 6년7개월에 걸친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사실상 패소해 제재가 확정됐다.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과징금 10억원을 부과받은 롯데하이마트 역시 지난 2021년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됐지만 본안에서는 패소가 확정됐다.
집행정지와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판단하는 대상이 다른 셈이다. 집행정지 단계에서는 처분을 즉시 집행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는지 등을 주로 살피는 반면, 본안에서는 공정위의 조사나 처분의 위법 여부를 본격적으로 판단한다.
◆강해진 조사·제재에 기업 대응도 적극화
최근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과징금과 시정명령이 기업 경영뿐 아니라 주주 관계와 자본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처분 이후 본안소송은 물론 조사 단계부터 법적 대응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가 강해지면서 기업들도 이를 회사 경영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단순한 시간 끌기라기보다 강화된 조사와 제재에 대한 법적 대응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도 과징금과 시정명령 등의 파급력을 고려해 행정권 통제 필요성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처분을 우선 집행한 뒤 수년이 지나 본안에서 취소될 경우 이미 발생한 손해를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쿠팡은 '손해'보다 조사권 근거가 쟁점
쿠팡 사건은 이미 내려진 제재가 아닌 '조사 단계'에서 집행정지를 신청했다는 점에서 기존 사건들과 성격이 다르다.
쿠팡은 대규모유통업법상 현장조사에 사전통지의 예외를 인정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공정위 조사에 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조사 절차를 준용할 수 있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현장조사의 특성상 사전통지 없이 조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집행정지 결과를 쿠팡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여부나 본안 소송의 승패와 곧바로 연결하기 어렵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쿠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여부가 아니라 공정위가 사전통지 없이 현장조사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하더라도 쿠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별개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하더라도 집행정지 사건과 본안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은 조사 권한과 절차의 적법성이다.
이황 교수는 "쿠팡 사건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보다 현장조사의 법적 근거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공정거래법상 조사 규정을 준용하면 현행법 해석으로 포섭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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