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韓 최초 교황청 명예극장 올라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원작 낭독극 '새' 올라
"아비뇽, 즐거움보다 고통 안고 떠나…위페르에 많이 배워"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배우 간 관계보다 우리가 만든 에너지를 관객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해요. 큰 무대에서 그 무대를 경험한 배우와 함께한 그 시간이 저한테는 좋았어요."
한국 배우 최초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상징이자 명예 무대인 교황청 명예극장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영(64)이 15일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호흡한 소회를 이같이 말했다.
이혜영은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로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작품은 소설의 제1장을 발췌해 낭독극으로 재해석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올해 초청언어(Guest language)를 한국어로 지정해 한국 작품 9편이 공식 초청됐다. 한국 작품이 아비뇽 페스티벌에 오르는 것은 1998년 '아시아의 열망(Désir d’Asie)' 이후 28년 만이다. 9편 중 단연 대표작은 '새'였다.
이혜영은 내달 10~1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낭독극 '새'를 선보인다. 공연은 10월 8일부터 개막하는 '202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일환으로 개최한다.
지난 7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은 한강이 함께 무대에 올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연출해 한강을 비롯해 이혜영, 위페르가 무대에 올랐다. 한강과 이혜영은 한국어, 위페르는 프랑스어로 각자의 언어로 낭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비극사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제주에 사는 '인선'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친구 '경하'에게 홀로 남겨진 새의 돌봄을 부탁한다. 경하는 새를 돌보며 인선 가족의 기억을 쫓아 제주 4·3 사건을 마주한다.
낭독극 경험이 적었던 이혜영은 "처음부터 '인선'이 돼서 가겠다는 것이 각오였다"며 "줄리 연출가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연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낭독극이지만 단순히 작품 속 문장을 읽어내는 것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의 감정에 이입한 셈이다.
처음에는 교황청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는 기대에 흥분됐지만 연출이 원하는 여러 요구사항에 따라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 "즐거움과 설렘보다 고통을 안고 한국을 떠났죠."
위페르와 호흡하면서 많은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혜영은 "완벽을 기하려 애쓰는 편인데, 이자벨은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무대를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며 "이번에 배운 점이 혼자 너무 고립해서 하지 말고 같이 (무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리허설을 거치며 스태프와 호흡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위페르의 모습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혜영은 당시 페스티벌 관련 일화를 들려줬다. 독일 대표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낭독극을 인상 깊게 보고 한강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관객 역시 한국과 한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며 "한강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한국의 위상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혜영은 한강의 낭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한강의 파트가 사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며 "(한강이) 감정 없이 담백하게 읽는 것이 매우 좋았다"고 했다. 다만 이번 한국 공연에는 한강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이혜영은 "낭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다르게 한국 관객에게는 다른 전율로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외국 관객에는 감정보다 전달에 신경 써 엄청난 전율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영은 19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해 연극 '사의 찬미' ,'문제적 인간 연산', '헤다 가블러',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파과' 등에 출연하며 한국 대표 배우로 자리했다.
여러 역할을 연기하며 활약을 펼쳐온 이혜영은 향후 연기하고 싶은 역으로 '뮤지컬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여배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배우가 됐다"며 웃었다.
올해로 데뷔 46주년을 맞은 이혜영은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처럼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의 꿈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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