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비움'·신예의 '채움'…50년 뛰어넘은 춤의 격돌 '시나위'

기사등록 2026/09/10 19:59:50

'관조' 82세 배정혜, '투쟁' 32세 배진호

국립무용단 최초 세대 분리 공연

10월 8~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서울=뉴시스]10일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신작 '더블빌:시나위' 시연이 진행됐다. 배정혜의 '살풀이 생'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대금 소리가 울리자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여성 무용수들이 느린 동작으로 춤을 춘다. 손가락을 치마폭에 살짝 포개놓은 듯한 자세로 사뿐사뿐 걷는 무용수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대 한 켠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배정혜 안무가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이윽고 심장 박동소리처럼 들리는 전자음악(EDM) 사운드와 비트에 맞춰 남녀 무용수가 몸을 크게 비튼다. 한 무용수는 몸부림을 치듯 춤을 추고, 다른 무용수들은 비명을 지르듯 입을 크게 벌리지만, 끈처럼 연결된 이들은 서로의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

1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분장동 연습실에서 국립무용단 '더블빌: 시나위' 시연이 펼쳐졌다. 전통음악 시나위를 50년의 세대차가 나는 안무가 배정혜(82), 배진호(32)가 서로 다른 감각으로 담아낸 작품을 더블빌로 엮었다.

배정혜 안무가의 '살풀이 生(생)'은 한국 창작춤의 지평을 넓혀온 배정혜가 9년 만에 국립무용단과 선보이는 신작이다. '살(煞)'을 풀고 새로운 생명과 평안을 기원하는 살풀이 정신을 시나위 음악 위에 얹어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서울=뉴시스]10일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신작 '더블빌:시나위' 시연이 진행됐다. 배진호의 'AHRA'(아라)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깊은 호흡과 연륜을 지닌 무용수 28명으로 구성된 NDCKⅠ 그룹이 이매방류 살풀이, 한영숙류 살풀이, 김숙자류 도살풀이, 김수악류 교방굿거리 등 다양한 전통 춤사위를 바탕으로 오늘의 살풀이를 선보인다.

배정혜 안무가는 신작 '살풀이 生'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시연 이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한영숙, 이매방, 김숙자 등의 살풀이를 '신전통'으로 재해석해 하나의 퍼포먼스 안에서 즐겁게 노는 장면을 안무했다"고 말했다.

음악적 단조로움도 과감히 탈피했다. "살풀이 음악만으로 30분을 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야금 산조와 숨겨진 노래 등 여러 음악을 종합해 '풍류 살풀이'로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10일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신작 '더블빌:시나위' 시연이 진행됐다. 배정혜의 '살풀이 생'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여성 무용수만 등장하는지 묻자 "후반부에 한량(남성)들이 나와 기녀들과 폭포수 아래서 시원하게 여름을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며 "배진호 안무가가 작품에 의미를 많이 부여할 것 같아, 나는 노인네답게 심플하게 풀었다"고 짚었다.

반면 두 번째 시연작인 배진호 안무가의 'AHRA'(아라)는 서사적 밀도와 극단적 감정을 꽉 채워 넣었다. 아리랑에 담긴 다양한 정서와 시나위의 즉흥성에 주목해 이를 오늘의 신체 언어로 풀어낸 작품으로, 13명의 젊은 무용수(NDCKⅡ 그룹)가 날렵한 몸짓과 에너지를 선사한다.

배진호는 "아리랑 자체는 명확한 뜻이 없는 감탄사이지만, 그 안에 우리 민족성의 '한'과 '애'가 짙게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10일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신작 '더블빌:시나위' 시연이 진행됐다. 배진호의 'AHRA'(아라)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무용수들이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쉬는 동작에 대해서는 "이미 101번째 언덕을 지나는 지치고 처절한 사람들의 노동요"라며 "다음 언덕을 넘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협력하고 다투는 감정선을 담았다"고 답했다. 극 후반부 여성 무용수들의 격렬한 대립 역시 "아름다운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투쟁과 분노를 녹여낸 것"이라고 부연했다.

EDM 사운드 활용에 관해서는 "시나위 장단 자체보다는 즉흥 음악이라는 시나위의 어법을 움직임에 적용했다"며 "후반부에는 국거리와 휘모리 장단을 장구 연주자와 라이브로 녹음해 즉흥 연주법으로 녹여냈다"고 전했다.

50년 세대 차이에도 두 안무가는 서로의 무대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배정혜 안무가는 배진호의 춤을 두고 "요즘 유행하는 동작이 아니라 처음 보는 동작으로 한을 풀어내는 느낌을 받아 아주 좋게 봤다"고 호평했다. 배진호 안무가 역시 배정혜의 무대에 "다른 곳에서 따라 할 수 없는 대형 이동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지켜봤다"고 화답했다.

[서울=뉴시스]안무가 배정혜(82)와 배진호(32)가 10일 오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신작 '더블빌:시나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원동력을 "그냥 태어난 팔자이자 운명"이라고 담담히 밝힌 배정혜 안무가는 대중매체와 사회의 관심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강아지들은 텔레비전에 다 나오는데, 무용은 리허설이나 본 공연을 한 번도 다뤄주지 않습니다. 무용이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면 안 되는데 엄청나게 소외되고 있어 한이 됩니다. 발레보다 우리 전통 무용과 창작이 더 올라가야 이 나라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어요."

국립무용단의 '더블빌: 시나위'는 오는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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