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향·임희윤 "누군가는 먼저 음악을 들어야 한다"…알고리즘 시대, 라디오가 증명한 '음악적 안목'

기사등록 2026/09/02 18:05:08 최종수정 2026/09/02 18:13:34

'2026 글로벌 뮤직 페어(뮤콘·MU:CON 2026)' 첫날 현장

올해 SBS 파워FM 개국 30주년

13년 심야 실험실 '애프터클럽' 기획자의 뚝심

"모든 프로그램이 같은 취향일 필요 없어"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은지향 SBS 라디오 국장, 임희윤 음악 평론가. 2026.09.02.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새로운 음악이 세상에 가서 닿으려면 누군가는 먼저 듣고 선택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야 합니다."

스트리밍과 숏폼, 정교한 인공지능(AI) 추천 알고리즘이 청각 경험을 지배하는 시대에도 끝내 대체되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람의 귀'와 '맥락'이다. 1996년 개국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SBS 파워FM의 역사는 곧 낯선 소리를 먼저 길어 올려 대중에게 건네온 큐레이션의 궤적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큐브컨벤션센터에서 펼친 '2026 글로벌 뮤직 페어(뮤콘·MU:CON 2026)' 첫날에 '미디어가 인디를 디깅하는 방식'을 주제로 은지향 SBS 라디오국장과 임희윤 음악평론가가 마주 앉았다.

간판 프로그램 '두시탈출 컬투쇼'를 연출해 한국PD대상을 수상하고 2013년 심야 음악 프로그램 '애프터클럽'을 기획·론칭하며 현재 라디오본부의 콘텐츠·편성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은 국장 그리고 일간지(동아일보·헤럴드경제) 문화부에서 15년간 대중음악 현장을 기록하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자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의 필진 등 음악계에서 전방위로 활약해온 임 평론가의 만남이었다. 대중성과 서브컬처의 최전선을 두루 경험한 방송 편성권자와 현장 비평가가 길어 올린 화두는 다름 아닌 '음악적 안목'이었다.

과거 심야 시간대 음악 애호가들의 안식처였던 '전영혁의 음악여행' 연출을 맡으며 라디오 PD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은 국장은 매체의 본령을 '선험적 발견'으로 규정했다. LP와 CD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매체가 급변하는 30년 동안에도 "DJ와 PD, 작가가 자기 취향과 판단으로 음악을 고르고, 거기에 고유한 맥락을 붙여 청취자에게 건네는 일"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태도는 은 국장이 팀장 시절 직접 기획해 13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SBS 파워FM '애프터클럽'으로 구체화됐다. 7명의 뮤지션이 요일별 DJ를 맡아 선곡과 진행 전권을 행사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푸디토리움, 검정치마, 선우정아, 스텔라장, 미란이, 최유리, 구름 등 27명의 동시대 음악인들이 거쳐 갔다.

임 평론가는 이를 재즈 역사에 빗대어 짚었다. 그는 "스윙 빅밴드 시절, 관객을 위한 댄스 음악 연주가 다 끝난 새벽에 연주자들이 허름한 클럽에 모여 기량을 쏟아내던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에서 비밥이 태동했다"며 "'애프터클럽'은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비밥의 탄생과 맞닿아 있는 귀중한 실험"이라고 평했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은지향 SBS 라디오 국장, 임희윤 음악 평론가. 2026.09.02.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두 사람의 대화 도중 낮 시간대 프라임타임 라디오가 청취율과 광고, 익숙한 히트곡 중심의 보수적 선곡으로 기우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자성도 오갔다. 은 국장은 "수익과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신의 음악을 과감하게 다루는 창구도 공존해야 한다"며 "모든 프로그램이 같은 취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안전한 선택지 너머에 존재하는 불균질한 소리들을 방송 채널 안에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이들이 강조한 인간의 디깅은 기계 알고리즘과의 배타적 대립이 아니다. 알고리즘 이전에 존재했던 평론가, PD, 기획자, 레이블 간의 '휴먼 네트워크'가 축적한 감각의 연장선이다. 과거 인디 뮤지션에게 웰메이드 영상으로 명함을 만들어준 네이버 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던 임 평론가가 인터뷰를 통해 K-팝 얼터너티브 그룹 '바밍타이거'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포착해 무대로 연결하자, 당시 모비딕 등 디지털 콘텐츠 부서에 몸담았던 은 국장이 이를 방송 콘텐츠로 즉각 연계했던 일화가 대표적이다.

임 평론가는 과거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발굴한 방시혁 하이브(HYBE) 의장과의 일화를 상기하며 "방 의장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은 세 가지 중 하나가 '운전 중 라디오 듣기'였다"고 전했다. 정교한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찾아주지만, 라디오는 '내가 좋아하게 될 줄 몰랐던 음악'과의 우연한 충돌을 이끌어낸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라디오 방송들이 전파의 한계를 넘어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흐름도 짚었다. 미국 NPR의 '타이니 데스크(Tiny Desk)', 시애틀 KEXP의 라이브 시리즈, 호주 트리플J(Triple J)의 커버 프로젝트 '라이크 어 버전(Like A Version)', 영국 BBC 프롬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조명 등은 모두 방송국 고유의 큐레이션이 디지털 영상 플랫폼과 결합해 거둔 성과다. 악단광칠, 이희문(오방신과), 세이수미, 새소년 등이 해외 라디오 플랫폼을 발판 삼아 세계 무대에 각인된 과정도 언급됐다.

디지털 영상 콘텐츠가 오토튠과 매끄러운 편집으로 무결함을 지향할 때, 라디오는 현장의 우발성과 불완전한 순간 자체를 기록하는 무기가 된다. "라디오의 라이브는 스튜디오 안에서만 닫히지 않고 인터뷰와 숏폼, 텍스트로 중첩되며 기록됩니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순간이야말로 아티스트의 본질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차별화된 가치죠."(은지향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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