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 받는 정규 앨범 '서울(XEÖUL)' 발매 기념 인터뷰
밀실의 관조('커리지')서 타인과 뒤엉킨 골목('서울')으로
고립 깬 외연의 확장
스트리밍 숫자가 지워버린 물리적 감각의 복원
"음악은 춤을 위한 원초적 체험"
이태원 언더그라운드 베뉴로 향한 시선
"공간과 사운드의 정교한 직조"
전작 '커리지(CÖURAGE)'가 내면의 심연을 응시한 관조의 고백록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고립된 자아의 방을 나서 타인의 땀과 열기가 뒤엉킨 이태원의 좁은 골목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외연의 확장이다. 스트리밍의 숫자가 사운드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대, 그는 역설적으로 귀로 스치는 음악을 버리고 온몸을 관통하는 음악을 주창한다. 장르의 뼈대를 해체하고 오직 '지금 이곳에서 춤출 수 있는가'라는 목적에 복무함으로써, 음악은 감상용 텍스트에서 원초적인 육체적 체험으로 격상된다.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군중 속 무아지경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에 기꺼이 몸을 맡길 때, 비로소 도시는 단절을 멈추고 하나의 거대한 리듬으로 맥동한다. 미지의 변수 'X'를 품은 이 앨범은 허무를 딛고 현재의 열기에 집중하는 '낙관적 허무주의'의 실천이자, 서울의 밤을 진동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엮어낸 치열한 공간적 증명이다. 방황하는 타인들과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기꺼이 언더그라운드 베뉴의 바닥으로 내려간 아이온, 그가 감각한 '지금, 여기'의 밤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서면으로 아이온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서울(SEOUL)의 스펠링에 미지의 변수 혹은 교차로를 뜻하는 'X'를 새겨 넣은 정규 앨범 '서울(XEÖUL)'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앨범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관조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밤이 품은 파동을 정면으로 통과합니다. 박규정이라는 창작자에게 '지금, 여기, 서울의 밤'은 어떤 청각적 질감과 풍경으로 감각됐습니까?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게 2010년대인데, 그 시기 제가 몸담았던 신(scene)에서는 힙합이 제일 뜨거웠어요. 물론 다른 장르들도 각자 강하게 있었고, 90년대나 2000년대는 제가 직접 겪은 게 아니라서 그 시절까지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다만 제가 직접 느낀 구간을 기준으로 보면, 가사 없이 인스트루멘털만으로 도파민을 끌어내는 감각은 아직 넓게 퍼져 있지 않다고 느껴요. 이제야 점점 댄스뮤직이 베뉴에서 주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과도기 자체가 서울의 질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 문화가 워낙 압축적으로 빨리 발전해온 나라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중문화가 중심에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압박이 유독 센 편인 거 같아요. 처음엔 서울을 대표하는 장르가 뭘까 진짜 오래 고민했거든요. 근데 서울은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여기 창작자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하고, 작품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세계 어디 내놔도 지지 않는 퀄리티를 만들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융합하는 걸 진짜 잘해요.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듣고 즐기는 것 자체가 서울의 사운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지역명을 음악 앞에 붙이려면 그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현상은 스트리밍 수치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스트리밍 숫자로는 서울만의 사운드를 대표할 수가 없거든요. 클럽, 파티, 페스티벌은 사람들 여가·문화생활 담당하는 공간이고, 본질적으로 '즐거우러' 가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 즐거움이 일어나는 공간 자체를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르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형용하기 어려운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2010년대 한국은 '쇼미더머니'랑 같이 힙합 전성기를 보냈어요. 그때 기존 EDM 클럽들은 많이 사라지고, 힙합 클럽·힙합 라운지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저도 코로나 끝난 2022년부터 클럽에서 직접 플레이 많이 했는데, 그때는 힙합 트랙 위주로 틀었어요. 근데 그 당시 대다수의 힙합 클럽에서 채택되는 음악은 결국 '아는 노래'더라고요.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힙합 트랙 틀면 반응이 시원찮고, 댄스뮤직 섞어 틀면 사람들이 낯설어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아는 노래 리믹스를 찾거나, 힙합이랑 결이 가까운 댄스뮤직을 찾기 시작했어요. UK 개러지(Garage), 브레이크비트(Breakbeat), 바일레 펑크(Baile Funk) 같은 게 대안으로 채택된 것도 그래서라고 봅니다. 힙합 클럽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감각이랑 가까웠으니까요. 누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에요. 그게 시작이었고, 2026년 지금은 댄스뮤직이 서울 클럽 베뉴 주류가 됐습니다. 댄스뮤직은 애초에 춤추라고 태어난 음악이니까, 즐거움 얻으러 온 사람들한테 맞을 수밖에 없어요. 그때부터 저는 음악을 장르가 아니라 목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우스냐 테크노냐 EDM이냐가 아니라, 이게 댄스를 위한 음악인가. 저도 어느 순간부터 하우스, 테크노를 만든다기보다 '신나게 하는 음악', 댄스뮤직을 만든다는 쪽으로 넘어갔고요. 근데 서울의 밤을 제가 다 안다고는 말 못 해요. 솔직히 저도 이태원이랑 강남 문화밖에 몰라요. 동네마다 완전히 다른 문화가 돌아가고 있는데 서로를 잘 모르거든요. 홍대에서 노는 사람은 홍대에서만 놀고, 각 동네가 거의 딴 나라예요. 저한테는 그 단절 자체가 지금 서울의 밤이 가진 질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저도 잘 모르는 동네를 탐방하듯 다니고 있어요."
-앨범의 수록 기준을 '서울의 클럽과 베뉴에서 실제로 재생될 수 있는가'라는 단 하나의 명제로 설정했습니다. 귀로만 스치는 관념적인 감상을 넘어 스피커의 떨림과 바닥의 진동 같은 '물리적 체험'에 집착하게 된 내면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발매 전 공개된 스트릿 포트레이트가 인상적입니다. 케이크샵, 소프(Soap), 에스엑스(SX), 해밀턴 호텔 골목 등 이태원의 구체적인 지명들이 등장합니다. 참여 아티스트들이 실제로 발을 딛고 서 있는 장소를 음악보다 시각 이미지로 먼저 호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앨범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그 골목에서 실제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촬영 장소를 어디로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 사람들을 찍는다면 당연히 이태원이었죠. 저한테 이태원은 서울에서 제일 젊고 뜨거운 동네예요. 세련된 것과 아직 덜 다듬어진 것, 와일드하고 날 것의 감성 그대로 한 골목 안에 다 같이 있고,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섞여서 노는 동네이기도 하고요. 음악보다 이미지가 먼저 나간 건,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는 순서였던 것 같아요. 이 앨범은 어떤 사운드를 하겠다고 먼저 정하고 만든 게 아니라 저 골목에서 나온 거니까요. 곡을 먼저 들려주면 사운드로만 판단하게 되는데, 사람과 장소를 먼저 보여주면 이 음악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보이잖아요."
"'커리지(CÖURAGE)'는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제 내면을 돌아본 앨범이에요. 그루비룸 하면서 오랫동안 정신없이 달려만 왔는데, 그 시기에 처음 멈춰서 제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내면의 고민과 상처, 그걸 극복하는 계기, 저는 그게 결국 다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때 음악 업계 전체가 힘들었잖아요. 저도 그때 생각 많아지고 불안했어요.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더라고요. 언젠가 이 일 자체가 싫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답 찾으려 하지 말고 반대로 물어보기로 했어요. '나는 언제 가장 행복했나.'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그리고 스무 살에 서울 올라왔을 때까지 하나씩 되짚어봤습니다. 언제 가장 설레고 도파민이 터졌는지를요. 저는 과학 좋아하는 사람이라 우주나 물리, 양자역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근데 과학을 계속 파고들다 보면 결국 철학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쿠르츠게자크트(Kurzgesagt)라는 유튜브 채널에 '낙관적 허무주의' 다룬 영상이 있는데, 그거 보면서 제가 그때 느끼던 감정이랑 생각이 정확히 언어화되는 걸 느꼈어요. 낙관적 허무주의는 언뜻 들으면 염세적이고 힘 빠지는 얘기처럼 들려요. 근데 결론은 '그래서 너가 뭘 할 수 있는데? 지금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고 너가 사랑하는 것을 해라'거든요. 성공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일에 더 집중하고, 내가 행복해서 겪어본 것들을 주변에 나누고, 그렇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면 그거면 충분하다는 거죠. 저는 일론 머스크처럼 인류 전체 삶을 바꿀 천재는 아니니까요. 제가 겪어보고 행복했던 걸 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게 저한테도 좋고 모두한테도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낙관적 허무주의의 뿌리였고, 그 이후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이라는 장르에 완전히 빠져들게 됐고요. 그 내면 정리가 끝나고 나니까, 이제는 그 평정을 혼자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직접 느꼈던 그 뜨거움과 열기를 더 많은 사람한테 퍼뜨리고 싶어졌어요. 저는 원래 클럽 DJ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스튜디오에 앉아서 다른 가수들 서포트하는 일은 정말 많이 해봤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이랑 몸으로 부대끼면서 느끼는 에너지는 경험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압구정 로데오에서 라운지 클럽을 짧게나마 직접 해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한 주에 거의 3, 4일씩 직접 플레이를 했어요. 스튜디오에서 셋 짜듯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랑 진짜로 호흡하는 법, 군중을 읽는 법을 그때 몸으로 배웠습니다. '서울(XEÖUL)도 그 연장선에서 만들었어요. 앉아서 구상한 게 아니라, 현장 사람들이 지금 어떤 흐름을 느끼는지, 요즘 뭘 제일 신나 하고 제일 많이 트는지 계속 물어보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커리지(CÖURAGE)'가 제 안을 들여다본 앨범이었다면, 서울(XEÖUL)은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 사이에 서본 앨범인 거죠."
-소속 레이블 앳에어리어(AT AREA) 산하에 DJ 전문 레이블 '에어리어 엑스(AREA X)'를 세웠습니다. K-팝과 힙합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프로듀서가 서울 로컬 전자음악 신의 자생성과 글로벌 확장성에 주목한 당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여기는 제 불안감에서 출발한 면도 있어요. 프로듀서는 남 빛내주는 직업이잖아요. 오래 해왔는데, 이게 저는 언젠가 닫힐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술과 지식의 발달로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의 희소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루비룸으로 운 좋게 알려진 프로듀서가 되면서 해외 공연이나 행사도 많이 다녔어요. 근데 무대에 설수록 체감되는 게 있더라고요. 그루비룸으로 아무리 유명해져도, 정작 제 콘서트에 와줄 사람은 없겠구나 하는 거요. 물론 저희를 보러 와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근데 그분들의 목적은 그루비룸이 만든 아는 곡을 듣는 거잖아요. 문제는 그 곡들이 DJ가 플레이하기에 적합한 장르가 아니라는 거예요. 히트곡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에는 다들 뜨겁게 환호하는데, 긴 벌스 구간으로 넘어가면 정적이 흐르거든요. 예를 들어 'VVS' 같은 곡을 틀면 훅에서는 당연히 다 같이 따라 부르는데, 벌스가 시작되면 그 긴 구간 동안 뻘쭘함이 흐르면서 공연 자체의 파워가 떨어져요. 그 정적을 무대에서 계속 겪으면서 두 가지를 알았어요.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움직이게 하려고 만들어진 음악, 그러니까 '댄스뮤직'이라는 장르가 왜 따로 존재하는지였고요. 다른 하나는 아 나는 실제로 사람을 즐겁게 할 힘이 없구나, 이름값만 있는 거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진짜 저를 보러 온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졌고, 그러려면 오프라인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제가 좋아하는 이 신이 안 크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저 혼자 잘된다고 뭐가 좋겠어요. 결국 제가 몸담은 나라에서 존중받고 따라주는 사람이 많아야 의미가 있거든요. 유럽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동남아에도 있고,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신이 깊게 자리 잡혀 있는데 한국만 상대적으로 안 크는 게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댄스뮤직은 어느 문화권을 가도 있었던 거잖아요. 고대에도 마을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음악 틀고 춤추고 다 했고요. 인간 DNA에 각인된 거라 절대 안 없어지는 영역이라고 봐요. 그래서 병목이 뭘까 봤는데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결집이 없는 거예요. 한국에 DJ도 프로듀서도 잘하는 사람 진짜 많거든요. 문제는 이 사람들이랑 베뉴 사이의 연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거 설명할 때 저는 가구 거리 얘기를 자주 해요. 가구를 팔 거면 혼자 뚝 떨어진 데서 파는 것보다 가구 거리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아요. 경쟁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게 나은 거예요. 사람들이 '가구 사러 간다' 하면 거기를 가니까요. 파이 자체가 커지는 거죠. 각자 흩어져서 아무리 잘해봤자 그냥 클럽에 놀러는 가도 아무도 'DJ 보러 간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되거든요. 여기서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배우고 싶어서 이 사람들을 데려온 거예요. 저한테 없는 게 오프라인 현장 에너지랑 내추럴함인데 그게 이 친구들한테 있거든요. 제가 뭘 주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거죠. 그루비룸이 해온 일을 보면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대중 문화와 서브컬쳐 그 사이에 연결을 하는 포지션에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역할은 내가 잘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벌 확장성도 당연히 있다고 봐요. 언어로 말하는 게 아니라 음악과 에너지로 말하는 거니까요.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다른 장르에서 한국인들이 이미 잘하고 있고, 이거라고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AREA X'는 그 판단에서 나왔어요."
"앨범 제목이 서울이잖아요. 그러면 킹맥 형이랑 만든 곡을 1번에 놓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킹맥 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DJ 문화가 한국에서 이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형도 트랙 듣고 몇 번이나 '이거 1번 트랙으로 진짜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뒤쪽에 있는 TRNSTN는 '서울(XEÖUL)' 앨범의 문을 열어주기에 제일 적절했어요. 베이스 음악을 이렇게 무겁게 배치한 것도 이유가 있어요. 이 앨범에 실린 게 아직 사람들한테 좀 낯선 장르들이거든요. 게토 테크, 테크노, 하드 테크노, 테크하우스, 스피드하우스 등 여러 세부 장르들이 섞여있는데 낯선 걸 처음 들려줄 때는 머리로 이해시키려 들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베이스가 몸에 먼저 닿아야 그다음에 오는 소리들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니까요."
-해방촌이라는 구체적인 서울의 지층을 연상시키는 2번 트랙 '해방 바운스(Haebang Bounce)'에서는 그래미 노미네이트 프로듀서 브릴리언트(BRLLNT)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게토 테크와 스피드 하우스의 빠른 템포 속에 서울 골목 특유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어떻게 녹아들었습니까?
-디피알 아틱(DPR ARTIC), 나우아임영(NOWIMYOUNG)과 함께한 3번 트랙 '폰 내려놔(Phone Down)'는 현대인의 스크린 중독을 역설적으로 겨냥합니다. 테크노 비트 속에서 스마트폰 화면 대신 오프라인의 공기와 눈앞의 리듬에 몰입하길 바라는 클럽의 원초적 에티켓을 이야기한 것인가요?
"핸드폰 내려놓고 놀자는 흐름, 요즘 해외에서도 꽤 핫해요. 아예 입구에서 촬영을 막는 클럽들도 있고요. 베를린 베르크하인 같은 데는 아예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버립니다. 그게 오히려 그 클럽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고요. 국내에서도 최근에 코르티스가 투어 이름을 아예 '풋 유어 폰 다운(PUT YOUR PHONE DOWN)'으로 짓고 공연에서 직접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장르도 다르고 서로 상의한 것도 아닌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그만큼 다들 비슷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거겠죠. 디피알 아틱 형이랑 클럽에서 느낀 점, 어떤 메시지를 하고 싶은지 얘기하다가 형이 그러더라고요. '나를 안 쳐다봤으면 좋겠다.' 좋아해서 쳐다봐 주는 거 자체는 좋은데, 그것보다 관객들이 음악에 더 몰입해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많아요. 공연할 때 촬영해주시는 분들은 정말 감사한 분들이에요. 저도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을 놀러 다녔고 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나중에 앨범 열어서 다시 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에요. 그러면 그 순간엔 눈과 귀로, 몸으로 그 장면을 담아두는 게 훨씬 오래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꼈어요. 나우아임영이랑 얘기할 때는 좀 더 근본적인 얘기가 나왔어요. 사람들 핸드폰을 내려놓게 만들려면, 결국 화면에는 안 담기는 그 이상의 에너지를 무대에서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대화 끝나고 바로 '폰 내려놔'라는 가사가 나왔고, 그 자리에서 바로 녹음까지 했습니다. 요즘 가사에 내용을 너무 많이 담으려고 하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이는 거 같아서, 짧고 반복되는 구절로 기억에 남게 하려고 했고요. 어쨌든 파티든 클럽이든 공연이든 페스티벌이든, 다 즐기러 가는 자리잖아요. 핸드폰만 들고 있으면 사실 그 목적 자체가 깨지는 거니까요. 이 노래 나올 때만큼은 폰 내려놓고 한번 미친 듯이 놀아보라는 뜻으로 만든 곡입니다. 재밌는 생각도 하나 했는데, 이런 고민은 아마 많은 DJ들도 똑같이 할 거고 이 곡이 DJ들 사이에서 '이제 폰 내려놓고 놀아라' 타이밍에 DJ 툴(Tool)처럼 쓰이면 재밌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힙합 신의 대표적인 다작 프로듀서 기리보이(GIRIBOY)와 공동 작곡한 '돈트 댄스 히어(Don't Dance Here)'는 제목과 달리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역설적인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기리보이가 최근 천착해 온 전자음악적 시도와 아이온의 테크노 사운드가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났습니까?
-프로듀서 듀오 알앤비(R&B)는 앨범 전반부 트랙 다수에 관여하며 사운드의 뼈대를 잡았고, 위대한(OUIDAEHAN)은 '유어 조던스 아 퍼크드 업(Your Jordans Are Fucked Up)!'이라는 날것의 언어로 클럽의 바닥을 묘사합니다. 진흙탕이나 땀에 젖어 망가진 신발처럼, 거칠고 솔직한 서브컬처의 정서를 음악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홀드 잇(Hold It(Peak Up)'이라는 트랙을 함께한 R&B는 rom이랑 BAAWLA라는 듀오예요. 브릴리언트 계보를 이어서, 현재 한국 클럽신 에디트 문화를 제일 유쾌하고 에너지 있게 풀어내고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진짜 탄탄하고요. 최근엔 Rom이 스크릴렉스 '소마(SOMA)' 앨범 수록곡 'Scut 2'에 같이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베이스뮤직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친구들이에요. Rom이랑 Baawla 만나서 얘기할 때 제가 그랬어요. '지금 서울 클럽 사운드는 너네다. 이 앨범 축을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같이 작업하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유어 조던스 아 퍼크드 업!'을 함께 작업한 위대한 형이랑 작업한 곡은 이 앨범에서 제일 처음 만든 트랙이에요. 클럽에서 놀다 나올 수 있는 주제가 뭐가 있을까 얘기하고 있었는데, 형이 1989년 영화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의 한 장면에서 나온 '유어 조던스 아 퍼크드 업!'이라는 대사를 따서 곡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클럽에서 조던 같은 아끼는 신발 신고 갔다가 밤새 놀고 더러워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되게 공감 가는 얘기였고, 그 날 만나서 거의 완성본까지 다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바야'는 코커 형이랑 요즘 공통으로 꽂혀 있는 90년대 레이브 사운드랑 하우스를 섞어서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그루비룸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리프 멜로디 만드는 건 너무 자신있거든요. 바야도 메인 멜로디가 한 30분 만에 나왔던 거 같아요. '이태원 펑크'는 DJ 풀 하면 떠오르는 장르, 브라질리안 펑크(Brazilian Funk)를 패러디하고 싶었어요. 스케치할 때 제목은 '바일레 테크노(Baile Techno)'였고, 바일레 펑크 소스들을 쓰긴 했지만 테크노 럼블 베이스로 풀어낸 트랙이었어요. 발매 몇 일 전 믹스하면서 사운드까지 아예 싹다 갈아엎고 베이스 하우스(Bass House)스럽게 다듬었고요. 풀이랑 같이 만들어가면서 2절엔 바일레 펑크랑 퐁크(Phonk) 느낌을 좀 더 살리려고 했습니다. 이태원 동네 하면 딱 떠오르는 DJ가 풀(Pool)이니까, 그럼 이 트랙 제목도 '이태원 펑크'로 패러디하자, 그렇게 유쾌하게 정했어요. 블라세가 피처링으로 참여해줬는데, 가사는 블라세가 써서 녹음을 하는 중에 드랍 직전에 있던 '이프 유 에인트 레이디, 유 베터 런(If you ain't ready, You better run)' 구절을 그냥 '유 베터 펑크(you better funk)'로 바꿔서 녹음해달라고 했어요. 이처럼 즉흥적이고 과감한 방식의 시도가 다문화적 공간인 이태원 스러움이 아닐까 합니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9번 트랙 '체크 잇 아웃(Check !t Out)'은 샘플러와 드럼 머신을 다루는 신예 프로듀서 보잭(bojvck)의 브레이크비트로 닫힙니다. 서울의 밤을 완결 짓는 마지막 트랙을 가장 젊은 세대의 리듬 감각에 맡긴 배경이 궁금합니다.
"보잭은 이태원 씬에서 제일 젊고 로(raw)한 에너지를 가진 친구예요. 해외에서 모델로도 엄청 잘 활동하고있고 국내에서는 이태원의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DJ를 하면서 현재 스트릿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에요. AREA X 비주얼을 잡을 때도 저희가 말하는 스트릿함이 뭔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저는 '보잭스러운 것'이라고 얘기하곤 해요. 그 친구한테 어울리는 게 곧 저희가 가고 싶은 방향이었던 거죠. 음악도 정말 즉흥적으로 만들어요. 이 트랙 작업할 때도 자기 아날로그 신스를 굳이 직접 들고 와서 녹음까지 받아서 넣었거든요. 그래서 체크 잇 아웃(Check !t Out)만 놓고 보면 여러 장르가 섞여 있는데 딱 어느 장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려워요. 저는 그게 보잭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밤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그림을 마지막에 담고 싶었어요. 근데 그 다음 세대가 어디로 갈지는 저도 모르고, 사실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잖아요. 장르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 트랙이 그래서 오히려 맞다고 생각했어요. 앨범을 닫으면서 다음 앨범까지 열어두는 느낌이었어요."
"그루비룸은 저랑 휘민이 서로 교차검증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잡아가는 작업이에요. 교차검증을 거치면 그만큼 진행 속도가 더뎌지거든요. 계속 서로 검증을 하고 확인을 해야하니까요. 아이온을 할 때는 최대한 그 과정을 배제하려고 해요. 즉흥성이랑, 제가 오프라인에서 직접 경험한 에너지를 그대로 옮기는 데만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릴모쉬핏도 그 과정 없이 휘민이가 느끼는 힙합에 대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거라 진심 전달이 좀 더 잘 됐다고 생각해요. 안전장치가 없으니까 해방감은 분명해요. 누구를 설득할 필요도 없이, 제가 맞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바로 갈 수 있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니까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사실 아이온을 시작한 이유도 그거예요. 상업적인 곡들을 작업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그게 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서포트해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밝혀주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온전히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이 길을 택한 거예요. 근데 안전장치가 없다는 건 불안도 같이 온다는 뜻이에요. 틀렸을 때 그걸 걸러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루비룸은 남의 세계관을 빛내주는 일이고, 아이온은 제 세계관을 제가 직접 설득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이 둘은 책임감도 다르고 외로움의 무게도 완전히 달라요. 그래도 저는 이 불안을 굳이 없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불안이 있다는 게 오히려 제가 진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대중의 입맛과 마감에 쫓기며 음악적 회의감을 겪었을 때, 본래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전자음악의 원초적 사운드로 돌아와 숨을 틔웠다고 밝혔습니다. '히트곡 제조기'라는 타이틀 뒤편에서 겪었던 매너리즘의 터널을 통과하는 데 이번 앨범은 어떤 치유의 역할을 해줬습니까?
-비트메이킹을 넘어 공간, 패션, 영상, 무대 연출까지 디렉팅하는 '총체적 프로듀서'의 면모를 보여왔습니다. 이번 앨범 '서울(XEÖUL)' 역시 하나의 앨범을 넘어 서울의 클럽 문화를 시각적·공간적으로 아카이빙하는 기획물처럼 느껴지는데, 프로듀서의 역할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정의합니까?
"이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좋은 음악은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져 나와요. 근데 그 음악이 깔릴 판을 설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앨범의 목적이랑 의도가 더 중요해졌어요. 아무리 좋은 트랙도 엉뚱한 맥락에 놓이면 힘을 잃는 걸 너무 많이 봐왔어요. 그루비룸으로 활동하면서도, 제가 정말 사랑하고 자신 있던 트랙들이 잘 안 되는 걸 수없이 봤거든요. 아무리 좋은 트랙을 만들어도 그걸 받쳐줄 맥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게, 음악만 관할하는 작곡가로서는 제일 무기력해지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맥락 설계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AT AREA에서도, AREA X에서도, 이제 아이온(IÖN)이랑 그루비룸에서도요. 프로듀서의 역할에 한계를 긋고 싶지 않아요. 뮤직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포함하는 상위 집합은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티스트는 음악뿐 아니라 판 전체를 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의도랑 설계부터 탄탄하게 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예술의 본질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믹싱,마스터링도 전부 제가 직접 했어요. 사운드를 만드는 동시에 그 사운드가 어떤 공간, 어떤 이미지, 어떤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지까지 의도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요. 곡이 사람한테 도달하는 전 과정이 다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온이라는 이름은 전하를 띤 입자이자 '나아가다'라는 어원을 품고 있고, 스스로의 시그니처 컬러를 차가움 속에 생명력을 품은 '파란색'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번 앨범의 잿빛 콘크리트와 네온사인 속에서도 그 푸른 에너지는 여전히 유효합니까?
-최근 하이브(HYBE)의 새 레이블 ABD의 신인 걸그룹 '튜이드(TUIDE)'의 데뷔 앨범 '튠 & 플레이(TUNE & PLAY)' 전곡 프로듀싱을 맡아 유려하고 매끄러운 하우스·뉴잭스윙 터치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정교한 팝의 문법을 다루는 튜이드 작업과, 거친 언더그라운드의 물성을 다루는 아이온의 작업은 창작자로서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습니까?
"사실 색깔도, 역할도, 목적도 완전히 다른 작업이에요. 근데 결국 같은 사람에서 나오는 음악이잖아요. 안 섞일 수가 없어요. 실제로 아이온(IÖN)의 작업을 하면서 사운드를 엄청나게 연구를 많이했고 실력이 많이 늘었거든요. 그 노하우를 튜이드 작업에도 잘 반영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튜이드 작업을 할 때도 음악의 목적에 맞는 사운드에 좀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서 에지 있는 포인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요즘 K-팝도 하우스나 댄스뮤직을 정말 잘 만들어요. 어떻게보면 글로벌 최전선의 장르라 전세계의 음악 고수들이 지금의 K-팝을 전부 담당하고있어요. 차이는 장르가 아니라 믹스에서 난다고 생각해요. 팝은 하이를 쨍하게 해서 보컬이랑 코러스를 앞으로 꽉 채우는 쪽으로 믹스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건 완성도 문제가 아니라 목적 때문이에요. 팝은 멤버들 목소리가 제일 잘 전달돼야 하는 음악이니까, 그 목적에 맞춰 최적화된 방식이 정착된 거죠. 하지만 이렇게 믹스된 음악들은 클럽에서 틀면 너무 부담스럽고 시끄럽게 들려요. 마스터링도 너무 크고 EQ 특성이 달라서 앞뒤로 트랙을 믹스하기에 너무 이질감이 들기도 하고요. 근데 DJ가 플레이하는 댄스뮤직은 보컬보다는 트랙 사운드 자체로 승부를 봐야 해요. 클럽 음향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저음, 킥이랑 베이스가 거의 전부거든요. 그 베이스 영역을 어떻게 가지고 노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우퍼가 주는 그 저음의 무게감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신체로 느끼는 진동이에요. 그래서 꼭 현장에서 느껴야 알 수 있는 거에요. 이어폰 끼고 감상하는 용도랑은 다른 거죠.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게 그래서예요. 팝은 보컬을 전달하는 노래고, 클럽 트랙은 DJ가 픽업해서 음악 자체로만 에너지를 전달해야 하는 노래니까요."
-유주, 미란이, 제미나이, 리도어, 블라세 등 각기 다른 장르적 결을 지닌 뮤지션들이 모인 앳에어리어(AT AREA)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아티스트들의 고유한 개성을 균질화하지 않으면서도 레이블 전체의 감각적인 결을 유지하는 운영 철학은 무엇입니까?
"제가 아티스트들한테 찾아주려는 건 정답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오래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냥 성공하기 위해서만 뭔가를 하면 보통 금방 무너지더라고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계속 흔들리고, 방향도 자꾸 바뀌고요. 근데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방향이면, 잘 되든 안 되든 어차피 계속하게 돼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어떤 사람이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려면 어떤 루트가 있을까 귀 기울이고 같이 찾아주는 거예요. 제일 어려운 유형은 두 가지예요. 다 좋다는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게 없다는 사람. 그럴 때도 저는 그 사람의 일상에서 하는 이야기 안에서 최대한 많이 찾아보려고 해요. 장르는 다 다르지만 그 안에서 퀄리티 기준이랑 브랜드 톤은 하나로 맞추고요. 그게 결국 그 아티스트의 수명이랑 직결되거든요. 음악은 걱정 없어요. 제가 만드는 음악은 무조건 좋다 라는 확신이 있거든요. 음악은 자신있으니 음악의 외적인 부분, 아티스트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요."
-프로듀서, DJ, 레이블 대표, 그리고 한 명의 서울 시민으로서 박규정이 궁극적으로 이 도시의 음악사에 기록하고 싶은 '자신의 파동'은 어떤 형태입니까?
"거창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건 아니에요. 박사 학위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이 세상에 지식으로 가득 찬 원이 하나 있다고 치면, 그 원 둘레에 아주 작은 흠집 하나를 내서 인류 전체의 지식을 아주 조금 넓힌 사람한테 주는 학위. 저는 그 비유가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의 기여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누가 잘하는 스타일을 따라 해서 빨리 잘되는 것보다, 없던 걸 개척해서 아무리 작은 영향력이라도 새로운 흠집 하나를 내고 싶어요. 앞으로도 대중문화예술 안에서 조그맣게라도 새로운 걸 제시하는 사람으로 계속 활동할 겁니다. 사람은 10대에서 20대 중반에 미친 듯이 좋아했던 음악과 문화를 평생 가져가잖아요. 그래서 지금 자라는 세대한테 '이런 좋은 게 있어!'를 충분히 만들어놓고 몇 년만 지나면 이 친구들이 문화를 움직이는 세대가 되는 시점이 옵니다. 저는 단기적인 반응보다는 그 전환점에 걸고 있어요. 내가 직접 해보고 좋았던 경험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게 10명이든 1만명이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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